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문득 어릴 적 들었던 피아노 광고 음악이 기억난다. 맑은소리 고운소리 영창피아노 영창. 그 시절만 하더라도 피아노는 모두의 로망 같은 것. 얼마나 광고를 보고 또 보고했던지 피아노 소리의 표준은 그만 ‘맑고 고운 소리’가 돼버렸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명품피아노와 조율사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피아노 소리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명품피아노라고 하면 광고에서 보았던 것처럼 맑고 고운 소리를 얼마나 잘 낼 수 있는가로 가치가 결정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특정한 소리가 아니라 어두운 소리, 밝은 소리, 가벼운 소리, 무거운 소리, 거친 소리, 부드러운 소리 등 피아니스트가 그 어떠한 소리를 원하더라도 그 소리를 표현해 줄 수 있는 피아노가 명품 피아노라는 설명이었다. 심지어 진정한 명품피아노는 안개 속으로 빛이 사악 스며들거나 잔잔한 물속으로 빛이 투영되는 소리와 같이 추상적이기까지 한 표현들도 소화해 낼 수 있다고 하니 더는 말이 필요 없을 듯했다. 맑은소리 고운 소리를 가진 피아노에 대한 환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필자의 지금 하는 있는 업무가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일이기 때문이었을까?

명품피아노에 관한 생각이 수행하는 일에까지 금세 확장됐다. 나는 지금 중소기업지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혹시 어릴 적 들었던 피아노 광고 속 노래처럼 특정한 방식의 지원만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게 된다.

안타깝게도 많은 것들이 그것과 닮았다.

중소기업들의 세밀한 요구사항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결과물이기보다는 지원의 편의를 이유로 다소 경직되게 구성된 프로그램들로 구성돼 있다.

그나마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프로그램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비대면 시대에 맞게 기업이 시험지원을 신청한 장비를 택배를 통해 접수받아 처리를 한다거나, 연구기관 내에서만 제공하던 시험서비스를 연구인력이 기업현장에서 개별적으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또 기업지원 수수료를 기업 매출을 고려해 차등화한다거나 출연연이 보유한 3D프린터를 활용해 고가의 비용이 발생하는 금형 제작 이전에 무상이나 최소의 비용으로 사전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게 하는 노력들도 새로운 시도 중의 하나이다.

사실 이런 지원들은 꼭 코로나 위기상황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더 중소기업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 했다면 충분히 지원이 가능한 부분이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솔직히 출연연구기관도 그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크게 탓만 할 부분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연구개발이 전부였던 출연연구기관에 중소·중견기업 지원이 정관 미션에 추가된 것이 2014년 말이었으니 불과 6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기간 안에 중소기업지원을 위해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전문지원인력을 배치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을 확대해 여기까지 온 것만도 어쩌면 연구개발만 하던 이전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큰 변화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는 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연구개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창출해 국가과학기술발전에 기여했던 것처럼 이제는 중소기업지원에서도 그동안의 축적된 역량과 인프라를 활용해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몇 건의 지원을 수행했다는 실적 위주의 지원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소기업이 감동할 수 있는 수준까지 중소기업과 좀 더 소통하며 협업의 분위기를 조성해 지원방식과 내용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 마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나서 그들이 연주한 피아노가 기억나기보다는 음악이 주는 감동만이 남는 것처럼, 출연연의 중소기업지원도 중소기업에게 지원프로그램의 내용이 아닌 감동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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