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환 대전시 기반산업과장

올해 초 코로나19로 마스크 부족 현상이 심각하게 일어났다. 여전히 감염세가 잡히지 않고 있지만 그때는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가 늘어나고 백신과 치료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치료제는 마스크였다. 그러나 100~200장도 아닌 수만, 수십만장의 마스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마스크 본을 뜨는 일이 중요하고 시급했지만 본은 납품에만 1개월 이상 소요되는 정밀작업이어서 발만 동동 구르는 형편이었다. 이때 한 대기업이 본에 해당하는 마스크 금형을 1주일 만에 제작해 마스크 제조업체에 제공했고, 이 일이 마스크 공급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언론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 미담으로 소개됐지만 이처럼 어떤 물건을 동일 형태로 대량 제조하기 위해 금형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금형을 포함해 제조과정 전반에 활용되는 주조,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기초 공정기술 관련 업종을 뿌리산업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청동기시대 무기와 장신구를 제작하던 주조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자동차, 냉장고, 스마트폰과 같은 일상제품과 반도체, 로봇, 바이오, 친환경차 등 첨단산업에까지 필수적이다. 그래서 뿌리산업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물건으로 구현할 수가 없다. 이런 까닭에 최근에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에도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뿌리산업은 제조업의 핵심기반이고 연구개발의 상용화를 위한 시제품 개발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대전은 제조업의 60% 이상이 뿌리산업 직접 연관업종으로 분류되는 조립금속, 기계, 장비분야 업체이므로 지역 제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뿌리산업 발전이 필수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대전은 뿌리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환경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 지역에 밀집한 대학, 연구소와 협력하여 뿌리기업의 기술력을 높이거나 새로운 기술개발이 가능하고, 대덕특구 내 1600여개의 첨단기업과 출연연의 연간 제품제작 수요가 1조원대에 이를 정도로 시장도 작지 않다.

하지만 대전의 뿌리기업 대다수는 규모가 영세하고 전방기업에 의존하는 저부가가치 단순제조기업 위주이다. 규모가 작다보니 뿌리기업은 기술력을 증대하기 위해 대학과 연구소의 문을 두드리기를 어려워하고, 출연연과 전방기업 등 수요자들도 정보부족, 기술력 문제 등으로 타 지역으로 제작을 의뢰하는 일이 잦다.대전시는 이러한 지역 뿌리기업 성장 악순환을 타개하고 체계적으로 뿌리산업을 육성하고자 대전 뿌리산업 육성 기본계획(2020~2025)을 수립하고 기술개발·공정혁신, 시장창출, 특화단지, 혁신역량 강화라는 4대 전략, 14개 과제를 추진한다.

특히 그동안 산업계에서 꾸준히 제기해 온 설계역량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엔지니어링 설계역량 지원을 추진한다. 대전 뿌리기업의 다수는 설계가 매우 중요한 금형, 소성가공 업체들이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설계역량을 고도화하기 위해 지역의 혁신기관과 협력하여 전문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및 시험평가 장비를 마련하고 기업수준에 맞춘 단계별 기술지원과 시제품제작, 설계 전문 인력양성 및 뿌리기업 정보 제공과 원격 작업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구축, 엔지니어링 협의체 운영 등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고수준 설계기술을 보유한 뿌리기업을 육성하고, 디지털 설계능력을 보유한 청년 기계벤처도 발굴·육성할 계획이다.

뿌리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훌륭한 기술지원 환경과 규모있는 시장을 가진 대전의 뿌리산업 생태계에서 지역의 뿌리기업들이 디지털 기술 도입과 스마트화로 고부가가치 성장산업으로 육성됨으로써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지역의 첨단산업과 제조업을 든든히 뒷받침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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