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욱 한밭대 총장

내가 살고 있는 테크노밸리에는 관평천이 있다. 산책로가 아주 잘 만들어진 동네 하천이다. 이 관평천은 그리 길지 않다. 관평동에서 발원해 약 3㎞정도 길이로 갑천과 합류하는 작은 하천이다. 필자는 테크노밸리에 12년째 살고 있는데 작년까지는 그동안 관평천과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보통 한해 중 날 좋은 봄날이나 가을에 산책을 몇 번 나갔던 기억밖에 없다. 필자는 보통 실내운동을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필자의 습관도 바꾸어놓았다. 실내 운동하는 곳들이 문을 닫거나 문을 열어도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되다보니 자주 방문하는 것이 꺼려졌다. 그 결과 테크노밸리 생활 12년만에 관평천이 내 운동의 주무대가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관평천을 걷다보면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던 이름 모를 꽃이나 풀과 나무를 관찰하게 된다. 그동안 대충 쳐다보고 지나치던 이 식물들을 아침 운동을 하면서 자주 쳐다보다보니 그저 이름 모를 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각각 다른 제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식물들의 모습이 차츰 달라진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며칠 동안 밝게 피었던 꽃이 어느새 시들고 새로운 꽃이 또 다시 나를 쳐다봐달라고 한다.

이제는 인공지능 수준으로 발달된 스마트 폰 덕분에 나는 올해 많은 꽃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른 봄에 산수유나 개나리가 먼저 눈에 띄더니 완연한 봄이 되면서 민들레, 개망초, 금계국, 데이지가 산책로를 채운다. 민들레꽃이 사라질 때가 되면 미국수레국화, 쥐똥나무꽃, 붓꽃, 미국토끼풀 등도 본인의 존재를 알린다. 여름이 되니 기생초, 나팔꽃, 달맞이꽃, 여우팥꽃 등의 이름도 새롭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가을이 되면서 많은 꽃들이 시들고 또한 예초기에 의해 많은 풀들이 사라지지만 아직도 닭의장풀, 서양물레나물과 같은 작은 꽃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제 아마도 이번 달 말이면 관평천의 싱싱한 풀과 꽃들은 거의 다 사라질 것이다. 겨울이 오면 식물들의 입장에서는 이제 긴 동면의 시간을 견뎌내면서 다시 봄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관평천을 본격적으로 산책한지가 이제 반년밖에 안되었지만 나는 많은 세상의 변화를 경험한 느낌이다. 식물의 세계는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난다. 식물에는 일년생도 있고 다년생도 있다. 일년생은 정말 1년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다년생 식물도 계절의 변화에 따른 외형의 변화를 크게 겪는다. 이렇게 식물들은 계절의 변화에 발맞추어 자신의 변화를 만들어나가며, 어쩌면 그 변화를 통해 자신을 지켜나간다고 할 수 있다.

인생 10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바꿔 입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계절마다 사람 자체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긴 호흡으로 먼 앞날을 바라보며 차분히 미래를 준비하게 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같이 날씨변화보다 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사람이라는 동물이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100년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과연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자꾸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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