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의 양공(襄公)이 여동생인 문강(文江)과 불륜을 저지르는 등 포악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계속하자 화가 닥칠 것을 우려한 그의 두 동생인 공자(公子) 규(糾)와 공자(公子) 소백(小白)은 각각 노(盧)나라와 거나라로 망명을 떠났다.

결국 제양공은 송손무지(公孫無知)에게 죽임을 당하고 다시 얼마 못가서 공손무지도 살해당하자 공자 규와 소백은 서로 비어 있는 권자(權座)를 차지하기 위해 귀국을 서둘렀다.

공자 규를 따르던 관중은 앞서 가던 공자 소백을 없애려다 실패하고 도리어 소백이 먼저 제나라로 들어가서 권자를 차지했는데 그가 제환공(齊桓公)이다.

제환공은 노나라에 머무르고 있던 공자 규를 죽이고 관중을 압송하라고 노장공에게 압력을 가했다.

결국 포박(捕縛)돼서 제나라로 압송돼 가던 관중은 제나라의 국경에 도착했다.

배고픔과 갈증에 지쳐 있던 관중이 변방을 지키는 관리에게 음식을 좀 달라고 했다.

관중을 알아본 관원은 인제를 무척 아끼는 제환공이 그를 죽이지 않고 중용하리라 생각해 그를 정중하게 대접하며 말했다.

“만약 임치(臨淄)로 가셔서 다행히 사면되어 높은 관직을 받으신다면 저에게 어떤 보답을 하시겠습니까?”

이에 관중이 대답했다.

“만일 당신의 말대로 된다면 나는 오직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임용할 것이오(임인유현:任人唯賢).”

훗날 관중은 자신의 말처럼 제나라 환공을 도와 패업을 이룩했다.

서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열(說) 은나라의 무정(武丁:기원전 1324-1265재위)재상이다. 피폐해진 국력을 다시 일으킨 무정은 늘 재상 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짐은 모든 관리들에게 달려 있사오니 벼슬은 사사로이 친한 사람에게 줘서는 아니 돼며 오직 능력 있는 이에게만 주시고(유기능:惟其能) 작위(爵位)는 나쁜 덕을 가진 사람에게 주시지 말고 오직 현명한 이에게만 주십시오(유기현:惟其賢). 항상 선하시면 행동하시고 행동은 그 때를 맞추어야 합니다. 모든 일마다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습니다. 이런 일을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했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