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많지 않지만 의료원장으로 근무하며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수술날짜가 몇 달 후로 잡혔는데 환자가 너무 아파하니 좀 빨리 당겨줄 수 없느냐?'는 부탁이었다. 우리 의료원 정형외과가 수술 잘 하기로 소문이 나 있으니 환자가 많이 밀려 있고, 지역사회에 아는 사람들이 좀 있다 보니 그런 부탁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 부탁을 들어주려면 피해를 보는 다른 환자가 있기 때문에 힘들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김영란 법'이 만들어지며 병원에서의 그런 부탁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공감대가 늘어나며 그 힘들던 일은 없어졌다.

또 다른 어려운 부탁은 환자들이 어떤 병으로 진단 받았을 때 서울의 대형 병원 유명한 교수를 소개해 달라는 것이다. '그 정도의 병은 우리 지역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치료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도 설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치료 받을 수 있다는 말은 꼭 완치된다는 말은 아니다. 서울에 가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치료가 되지 않는 경우도 포함되고, 또 회복하는 데에는 장기간의 시간을 요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문제는 많은 경우 결국은 서울로 간 것을 후회하며 돌아온다는 것이다. 어떤 병을 진단받으면 환자는 물론 보호자도 불안해지고, 심리적으로 약해져서 귀가 얇아지고(?) 이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에 솔깃해지며 전문가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회하며 돌아올 때는 건강 상태에도 문제가 남아 있으며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가 있다. 16세 이상의 인구 1000명을 관찰한 결과, 한 달 평균 750명이 한 번 이상 건강상 문제가 나타났는데, 500명은 그냥 집에서 관찰하며 지냈고, 250명은 지역사회의 의사를 방문해 치료를 받았다. 그 중 아홉 명이 병원에 입원치료가 필요했고, 그 중 한 명에서는 다른 과 전문의의 자문 진료가 필요했으며, 입원한 아홉 명 중 여덟 명은 지역 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했고, 단지 한 명만이 상급병원으로 전원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좀 차이가 느껴진다. 몸에 어떤 증상이 있어도 500명 정도가 진료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우리나라는 진료비가 싸기 때문에 그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의사를 찾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같이 편하게 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보험제도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질병은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점은 1000명 중 단 한 명만이 상급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우리는 배울 점이 있다. 우리는 어떤 병으로 진단이 되면 무조건 큰 병원 특히 서울의 대형 병원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고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대형 병원은 정말 중증환자를 위한 곳이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의 정착도 중요하다. 물론 점차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좀더 철저하게 지켜졌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 시도되고 있는 진료의뢰회송 제도는 중요하다. 하나의 의료기관에서 상급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전원시킬 때 환자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함께 보내고 또 치료 후 다시 그 의료기관으로 되돌려질 때 그동안 치료 과정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함께 보내는 제도다.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금은 시범적으로 수가도 상정하여 권하고 있다. 이런 제도가 정착되면 환자 스스로도 큰 병원에 가는 고민을 안 해도 되고, 의사는 필요한 경우 상급의료기관으로 보내는 것을 당연한 임무로 알고 수행할 터이니 일거양득으로 생각된다.

우리 의료원을 포함한 많은 병원들 치료가 어려운 경우 상급의료기관으로 안내하는 제도가 있다. 지역사회 상급병원은 물론 소위 수도권 소재 대형병원과도 협약이 되어 있어 필요한 경우 환자가 원하는 병원에, 원하는 의사를 지정하여 예약까지 해줄 수 있는 제도다. 환자 개인이 그런 병원에 예약하려면 몇 달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협약 기관 제도를 이용하면 대부분 일주일 내에 예약이 가능하므로 이런 편의를 받기 위해서도 우선 지역사회의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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