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414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재는 하태후와 대장군 하진의 세력을 몰아내고 실권을 쥐게 된 동탁에 의해 제위에 올랐기 때문에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고 승상을 겸해 군권까지 장악한 동탁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어느 날 사도 왕윤에게 하북의 원소로부터 함께 협력해서 동탁을 타도하자는 밀서가 왔다. 왕윤은 3대에 걸쳐 황제를 모시는 충직한 신하였다.

이에 왕윤은 생일을 빙자해 믿을 만한 조정 대신들을 집으로 초청해 밀서를 보여주며 속마음을 털어 놓고 대책을 강구했으나 모두 힘없는 문관들이어서 뽀족한 수가 나올 리 없었다.

이때 말석에 앉아 있던 효기교위 조조가 나서며 좌중을 향해 큰소리쳤다.

“이 조조에게 왕사도 집안 대대로 전해 오는 보검을 빌려 주시면 늙은 도적을 한칼에 응징하고 오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도 왕윤이 너무나 감격해 보검을 내주고 조조에게 술을 줘 격려하며 거사의 성공을 빌었다.

다음날 조조는 칠보검을 차고 동탁이 쉬고 있는 승상부의 별채로 들어갔다.

조조를 보고 동탁이 말했다.

“맹덕이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는가?”

조조가 얼른 둘러댔다.

“타고 다니는 말이 하도 비실거려서 늦었습니다.”

그러자 동탁은 옆에 시립해 있던 여포에게 말했다.

“봉선이는 나가서 좋은 말 한 필을 골라다가 맹덕에게 주도록 해라.”

무서운 여포가 나가자 조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잠시 후 비대한 몸집의 동탁이 돌아앉으려고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 기회를 포착한 조조가 보검에 손을 대고 뽑으려는 순간 동탁이 거울에 비치는 조조의 거동을 봤다. 동탁의 명검을 받아보니 칼집에는 칠보가 단장돼 있고 날이 푸르다 못해 눈이 부시는 보기 드문 명검이었다.

동탁의 격한 표정이 내려앉자 조조가 말했다.

“천천히 감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이 소생은 말을 시승해 보겠습니다.”

조조는 말에 올라타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쳤다.

임기응변(臨機應變:그때그때의 형편 따라 대응하다)에 능한 조조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일화의 성어이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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