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한데 모이기 조심스러워”
“못찾아뵌다 말 꺼내기 어려워”

[충청투데이 김희도 기자] 청주에 사는 직장인 A(45) 씨는 추석 연휴(9월 30일∼10월 4일)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고향에 가야할 지 고민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언택트(Untact·비대면) 명절' 분위기가 퍼지고 있으나 정작 고향 부모께는 눈치가 보여 '못 간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는 "다른 지역보다 확진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손주들 오기만을 목 빼고 기다리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난감해했다. 이어 "부모님이 먼저 말씀하시면 좋겠지만, 두 분 역시 자식들 보고 싶은 마음에 눈치만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추석이 다가올수록 A 씨와 비슷한 상황에서 속앓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추석여행을 가는 '추캉스족'이 몰려 전국 주요 관광지 예약이 만원이라는 뉴스까지 나오면서 더욱 눈치 보게 됐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주부 B(39) 씨는 "이번 추석에 못 갈 것 같다는 말에 시어머니가 많이 서운해하셨는데, 여행 가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우리도 핑계를 댄 것처럼 비칠까 걱정돼 다시 고민에 빠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귀성 문제가 가족 간 언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최근 C 씨 형제는 추석 때 괴산에 있는 고향 집에 모일지 말지를 놓고 한바탕 언쟁을 벌였다. 코로나19 때문에 각자 집에 머물자는 C 씨의 의견에 큰형이 말도 안 된다며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멀리 사는 형제는 내려오지 말고, 가까이 사는 가족만 모이자는 둘째 형의 제안도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결국 형제들은 결론을 맺지 못한 채 찜찜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C 씨는 "지금 시국에서는 아무래도 전국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한데 모이기는 조심스럽지 않느냐"며 "형들과 한 번도 다툼이 없었는데 이런 문제로 언쟁해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추석 연휴 이동 자제 권고에도 이처럼 귀성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코로나 시대의 명절 앞에 '방역'과 '가족의 정'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구인·구직 포털인 알바천국이 최근 개인회원 43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추석 연휴에 고향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31.3%였다. 그 이유로는 '코로나19 확산이 염려돼서(52.4%, 복수응답)'를 1위로 꼽았다. 아직 고향 방문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응답도 33.4%나 됐다. 물론 부모 세대가 적극 나서 추석 때 귀향하지 말라고 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괴산군 청천면 일대에는 '이번 명절은 거리는 멀리, 마음은 가까이', '불안한 만남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전하는 안전한 추석보내기' 등 귀성 자제를 권하는 문구의 현수막이 다수 내걸렸다. 한 주민은 "노인이 많은 시골은 코로나19에 더욱 취약해 다 같이 조심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인근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에서는 불과 엿새 만에 11명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된 바 있다. 이로 인해 150명이 사는 마을에 열흘간 이동제한이 내려지는 등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강제적으로 국민의 이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강도 높은 목소리도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추석 명절기간 록다운과 장거리 이동제한 조처가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올린 작성자는 "우한에서 번진 코로나19가 중국 설 연휴를 기점으로 중국 전역 및 전 세계로 확산한 것을 상기해야 한다"며 정부의 강력한 조처를 요청했다.

김희도 기자 huido0216@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