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재 대전보건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실화이다. 루게릭 병을 진단받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교수 모리가 제자인 미치 앨봄과 대화를 나눈 내용을 바탕으로한 비소설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는 “우리가 하루 하루 살아가는 순간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당시는 천 년을 살것처럼 행동하던 젊은 시절이라 몰랐는데 지금의 코로나 정국에서야 비로소 의미를 알게 되어가는듯 하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는 단 몇 시간이 주어진다면 내손으로 커피 한 잔 마시고 친구들과 잡담 나누며 그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한 모리의 절규를 떠올린다.

우리가 가장 재미 없다고 느끼는 시간이 어느 사람 한테는 가장 부럽고 소중한 시간이 된다는걸 알게 되면서 숙연함을 넘어 처연함 마져 느끼게 한다.

퇴근후 선술집에서 직장상사 뒷담화 안주삼아 스트레스 날리던 일상의 재미가 사라졌다.

가족 여행은 물론 가까운 친지나 친구를 마음대로 만날수 조차 어렵게 됏다.

공식적인 행사나 회의조차 과거처럼은 할 수도 없으니 세상 어느 한 구석도 자유로운곳이 없게됐다.

조상님들 추석 차례상도 인터넷을 통해서 받게 생겼다. 어느 조상신은 ‘PC방도 죄다 문닫고 인터넷 ID도 없는데 어떻게 차례상을 받을지 모르겠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온다.

코로나는 우리가 그토록 시시하다고 여기며 재미없어 했던 일상의 소소함 마져도 마치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서처럼 모든걸 앗아갔다.

이러한 사태를 회복하는데는 적어도 2~3년이 걸리거나 아니면 영원히 존재할수 없을거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양주동 수필에는 모기와 하루살이기 데이트 하다 헤어지면서 모기가 “우리 내일 또 만나” 하니까 하루살이가 “나한테는 내일이 없어” 하는 얘기가 나온다.

오백년을 사는 거북의 일생이 지루 하다면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 일생도 지루할거다. 다람쥐 체바퀴 돌듯 의미없이 사는게 시시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일상을 하루 빨리 되찾기 위해서는 분명히 지킬건 지켜져야 할 듯 하다. 신은 기도의 목소리도 듣지만 코로나 방역에 지쳐가는 의료진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도 한 방울 한 방울씩 세고 있을게다. 그래서 추석 연휴는 물론 광복절이던 개천절이던 더욱 조심해야 할 일이다. 코로나를 물리치는데는 오로지 과학의 힘이 필요할뿐이지 위대한 사상가의 이념이나 고상한 철학자의 가르침이 있어야 되는게 아니다. 잘못된 확신과 믿음이 더 위험한 진실의 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특전사에서 낙하훈련을 받을때 조교로부터 천 개중에 한 개꼴로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는 다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야 완벽한 준비 속에서 훈련이 이루어지고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걸 알았지만, 조교 말대로 라면 낙하산이 안펼쳐질 확률은 일 천 분의 일이다. 다른 사람한테 걸리면 천 분의 일 확률이지만, 그러나 나한테 걸리면 백프로다. 이미 확률과 통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나는 멀쩡하다며 믿기 어려운 신념을 내세우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 한테 피해를 주는 고약한 사람 소리 안듣는게 코로나 시대를 사는 사람의 지혜라고 곱씹어 본다.

초라한 차림으로 경로당 구석에서 졸고 있는게 욕심 부리다 병들어 대학병원 특실 차지하고 있는것 보다 나을거고, 다리밑에서 철렵한 피래미 매운탕 한 냄비 끓여 소주 한 잔 걸치는 별볼일 없어 보이는 노년 인생이 장례식장 특실에 누위 있는것 보다 휠씬 나을테니까 말이다.

거창하게 살려고만 하지 말고 이미 주어진 여건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부터 어려움을 극복하며 헤쳐 나가는 자세를 갖추는 지혜로움을 찾는게 점점 중요한 시기로 다가오고 있다. 천하를 호령하던 벼슬아치나 재벌 회장이라도 어제 죽었으면 오늘 아침에는 라면 봉지 한 개도 마음대로 뜯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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