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413>

춘추시대(春秋時代) 노나라는 세도가 있는 대신들이 수많은 가병(家兵)들까지 거느리면서 지나치게 득세하는 바람에 군주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돼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24대 노소공(魯昭公)은 권신(權臣)들에게 임금 자리를 빼앗기고 제(齊)나라로 쫓겨나고 말았다.

어느 날 제경공(祭景公)이 노나라에서 쫓겨와 제나라에 머무르고 있는 노소공에게 대답했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 임금 자리를 빼앗겼소?”

그러자 노소공이 대답했다.

“일찍이 나는 나에게 바른 말을 해주는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않는 바람에 안으로는 충신이 없어지고 밖으로는 백성들의 신망을 잃게 돼 가을 들판의 쑥대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했지만 실제는 줄기와 뿌리가 말라붙어 가을바람에 뽑혀 버렸습니다.”

제경공은 그 대답을 듣고 나서 측은한 생각이 들어 재상 안영을 불러 물었다.

“노소공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 일을 크게 뉘우치고 정신을 많이 차린 것 같은데 다시 노나라의 임금이 된다면 현명한 군주가 되지 않겠소?”

이 말을 들은 안영은 “무릇 물에 빠진 사람은 주의가 부족했기 때문이고 길을 잃은 삶은 길을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에 빠진 다음에야 물가를 살피고 길을 잃고 나서야 길을 묻는 것은 전쟁이 임박해 급한 나머지 병장기를 만들고(임갈굴정:臨渴掘井)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하거나 목이 마르고 나서야 우물을 파는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간곡하게 반대의 뜻을 표했다.

성어(成語) 임갈굴정(臨渴掘井)은 이처럼 안영이 한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갈이천정(渴而穿井: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같은 뜻으로 망양보뢰(亡羊補牢: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가 있다.

사회가 다변화 되고 할 일은 많고 시간이나 하고 있는 일의 폭은 좁아서 하루하루를 허둥대며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 약 5만가지 생각과 일들이 펼쳐진다고 하는데 두서없는 사람은 5만가지중 한 가지도 정리 못하고 계획 속에 일을 하는 사람은 정한 일을 잘 조리 있게 정리해 마무리와 결실을 순서에 따라 맺는다. 언제나 사전계획을 잘 세워 목이 마를 때 우물파지 않는 주변이 잘 정리된 신의(信義)있는 사람이 돼보자.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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