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412>

진(秦)나라의 폭정에 항거하는 반란이 일어나 천하가 극도로 혼란스러울 때의 일이다.

패현(沛縣)의 사수정장을 맡고 있던 유방(劉邦)은 여산릉(驪山陵) 공사장으로 부역자들을 인솔하고 가던 중 도망자가 속출하자 나머지 장정들을 돌려보내고 일부의 추종자들과 함께 망탕산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다.

이때 유방의 상관인 패현의 현령도 반군의 괴수인 진승(陳勝)의 대열에 호응하고자 하급 관리로 일하던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을 불러 상의했다.

그러자 소하가 말했다.

“진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현령이 반란군의 대열에 가세한다면 자칫 백성들이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진나라의 폭정과 부역을 피해 성 밖으로 도망친 백성들이 유방의 밑으로 모여 있는데 그들을 불러들여 힘을 빌린다면 백성이 모두 복종할 것입니다.”

이에 현령이 승낙하자 번쾌를 시켜 유방을 불러오라고 했다.

이윽고 유방(劉邦)이 100여 명의 도망자들을 이끌고 성 밖까지 도달하자 현령은 두려움이 변해서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그들을 막았다.

이에 유방은 진나라의 폭정을 함께 타도하자는 호소문을 써서 화살에 매달아 성안으로 쏘아 보냈다.

그러자 성안 백성들이 모두 호응해서 현령을 잡아 죽이고 성문을 활짝 열어 유방을 환영 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패현의 현령이 돼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유방이 말했다.

“천하가 혼란에 빠져 각처의 제후들이 다퉈 일어나고 있는 지금 우두머리를 뽑지 못하면 단 한차례의 싸움에 패하여 피로 땅을 얼룩지게 하고 말 것이오.”

성어(成語)는 이와 같이 유방이 한 말에서 비롯된 것이며 다시는 재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지없이 패한 것을 비유하는 말로 이후부터 사람들은 유방을 패공(沛公)으로 불렀다.

우리 인생도 젊어서는 실패해도 일어설 용기와 기회가 있으나 정년 후 늙음이 왔을 때는 재기가 어려우니 항시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가듯 자분자분 완보완심(緩步緩心:느리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느리지만 따뜻한 마음으로)으로 여유 있게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활해 본다면 더욱 좋은 생활이 될 것이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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