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기왕 국회의장 비서실장

"회의나 업무협의를 위해 꼬박 하루를 잡고 올라옵니다.", "상임위 출석이 잡히면 아예 짐 싸들고 하루 먼저 와서 준비해야 합니다."

중앙부처의 세종시 이전이 확대되면서 점점 더 많은 공직자들이 백팩을 매고 국회의사당을 오간다. 길 위에서 업무를 보는 과장과 카톡으로 지시하는 국장, 이들을 '길과장, 카국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신조어에는 세종시에 근무하는 중앙부처 공직자들의 자조적인 현실과 푸념이 묻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수도 이전추진을 시작했고, 우여곡절을 거치며 지금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가 탄생했다. 지난 16년간 중앙행정기관 22개와 그 소속 기관 20개 등 42개 기관이 이전했다. 여기에 근무하는 공직자만 해도 무려 1만7,3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발표한 국토연구원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길과장, 카국장'들이 쓰는 여비와 교통비(출장비용)가 연간 127억 6559만 원에 달한다. 국민의 혈세가 길거리에 뿌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잦은 출장으로 인해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의 행정 손실이 발생한다.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니 정책 품질 또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완성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정부 입법이 최근에는 의원 입법보다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국회와 정부 부처 간 거리 제약에서 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는 세종의사당 건립을 추진해 왔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청와대, 국회 등의 권력기관 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문제를 해소해야 하는 문제와 그 밖의 정치적 합의 과정이 녹록지 않아서 당장 결과를 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은 그간의 소모적 논쟁을 피하면서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청와대와 국회, 정부 부처 모두 세종시로 이전하자는 여당 대표의 주장이 나왔고, 야당 또한 세종시 국회 설치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은 분위기이다. 약간의 시각차가 존재할 수 있지만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국가균형발전을 촉진하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지리적 거리 때문에 생기는 각종 비효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에 한발 더 나가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국회는 현재 상임위 중 소관 부처가 세종에 위치하는 11개 상임위를 포함해서 예결위,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및 사무처?도서관 일부를 이전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년에 걸쳐 20억 원의 예산이 이미 확보되어 있고, 내년도 예산에 설계비를 포함한 일부 예산이 추가로 반영된다면, 2021년에는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실질적인 출발이 가능해 보인다. 현 여의도 의사당 부지보다 더 넓고, 금강이 한눈에 보이는 잘 생긴 후보 부지도 이미 예정되어 있다.

공행공반(空行空返), 행하지 않으면 돌아올 것도 없다. 국회와 청와대의 이전을 통한 행정수도 완성은 시간을 두고 논의하되 당장 실천 가능한 것은 먼저 처리하면 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세종의사당 건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 같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안 올 수도 있다. 기회는 과감한 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의 기회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과감한 결단을 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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