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하버드 대학교 사진=연합뉴스

직접대면이 줄어드는 이른바 언택트 분위기로 만남이 뜸해지는 동안 그간 받았던 명함을 정리하였다. 세상을 떠난 분, 처음 만나고 오랜 동안 교류가 없는 사람, 앞으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을듯한 경우는 부득이 명함을 조심스럽게 처분하였다. 나의 명함도 다른 사람이 함부로 취급할 듯싶어 최대한 정중하게 봉투에 넣어 재활용되지 않게 폐기하였다. 그리고 그분들과의 만남의 기억을 떠올려 봤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들께 나 또한 그런 존재로 남을 수 있겠다 싶어 여러 생각이 오갔다. 보관하는 명함을 명함관리 앱을 사용하여 사진을 찍으면 이름, 직함, 전화번호가 자동으로 분류, 입력되어 편리했다.

명함을 찍던 중 특이한 명함이 눈에 띄었다. 근 20년 전, 받을 때에도 좀 튄다 싶었는데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가했을 때 인사를 나눈 일본인 교수였는데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대학 이름을 큼지막하게 적어 넣었던 것이다. 통상 박사일 경우 학위 종류만 기재하는 것이 통례인데 독특했다.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명성에 자부심과 긍지가 드높아 그런 명함을 만들었으리라. 일본에는 워낙 유별난 개성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명함의 다른 기재내용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활자로 박사학위 수여대학을 적시한 명함, 그 뒤로도 이런 스타일의 명함은 받아본 적이 없다.

이른바 '스펙'에 대한 기대와 의존, 열망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스펙을 끌어 올리려는 노력, 자신의 스펙을 과시하려는 의지와 그 과정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윤을 도모하려는 열망은 나날이 드높아지는 듯하다. 예전에는 주로 태권도 도장 그리고 한의원 이름에 운영자의 출신대학 이름을 앞세워 오곤 했다. 그 대학 특정학과의 인지도에 힘입어 마케팅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는 명백하다. 대학에서도 동문들이 모교 이름을 내거는 행위를 묵인 내지 장려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풍조가 이제는 전국 각지 의원급 개인병원에도 크게 파급되어 출신대학 이름을 앞에 붙이고 진료과목을 쓰는 사례가 일반화되었다. 병원의 신뢰도를 대학 이미지에 덧붙여 덕을 보려는 일종의 감성 마케팅을 접하며 오래전, 박사학위 수여대학을 명함에 큼지막하게 적어 넣고 자랑스레 건네던 그 교수의 모습이 겹쳐졌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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