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한 고용이나 노동 상태에 놓인 노동자 집단을 말한다. 꼬박꼬박 월급 받는 직장인이 실직의 위협을 받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용어다. 월급쟁이의 특권과 안정성이 갈수록 허물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조어로 영국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처음으로 주창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법 피고용, 임시적 고용을 비롯해 재택근무(Telecommuting)자, 유연 노동자, 하청업자와 프리랜서, 자영업자들까지 고용(수입) 지속이 불확실하고 보장되지 않은 노동자를 포함한다. 여차하면 자의 반 타의 반 실직 위기에 처한 자들이다. 프레카리아트는 대체적으로 단순노동에 종사하며 저임금이다. 많은 학자는 프레카리아트의 주요 원인으로 인공지능(AI)의 인간노동 대체를 들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팽배, 즉 기업들은 비용 최소화를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도 프레카리아트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프레카리아트화의 예기치 않은 새로운 강력한 절대 변수가 등장했다. 코로나19다. 발생 8개월이 넘었지만 좀처럼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지연되면서 코로나19의 방비책이 철저한 방역과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e)에 의존하고 있다. 감염확산을 위해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거나 내국인의 활동 반경을 좁히고 있다. 이제 많은 직장인들이 다니던 직장도 원하던 그러하지 않던 그만두어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처해 있다. 무급휴직, 재택근무, 순환제 근무 등도 감내해야 한다. 감내하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많은 직장인이 이미 직장을 떠났다. 직장을 떠난 프레카리아트는 다시 생계를 위해 불안정한 직업을 전전한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직장을 구하고 실직하는 일이 반복된다.

제4차 산업혁명과 신자유주의에 이어 바이러스 침공은 전 세계적으로 더욱더 프레카리아트화를 부추기고 있다. 프레카리아트 대상이 블루칼라와 비정규직에 집중된다는 점이 문제다. 그들은 도시의 유목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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