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410

▲ 전거후공(前倨後恭). 박일규 서예가 제공

전국시대는 수많은 책사(策士)들이 자신의 경륜이나 부국강병의 이론을 주장하며 각국을 돌아다녔는데 말 한 번 잘해서 임금에게 발탁되어 높은 관직을 얻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중에서도 변설(辯舌)로 벼락출세한 사람으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가장 유명하다.

장의와 함께 귀곡자(鬼谷子)한테서 가르침을 받은 소진이 먼저 세상에 나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심의 능력을 알아줄 군주를 찾았으나 실패하고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공부를 한답시고 집안일을 전혀 돌보지 않았던 그가 거지 행색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가족들이 그를 달가워할 리 없었다.

부모와 아내는 본체도 하지 않았고 형수는 밥도 주지 않으면서 구박하기가 일쑤였다.

이에 자극을 받은 소진은 이를 악물고 밤낮으로 책을 읽고 방법을 연구했다.

밤에 졸음이 오면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는 등 피나는 노력 끝에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서방의 강대국 진나라에 대해 나머지 여섯 개 나라가 동맹을 맺어 대항하자는 이론인 합종책을 가지고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부터 차례로 설복해 마침내 진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동맹을 성사시키고 6국의 재상까지도 겸임하게 됐다.

그렇게 되니 소진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고 남았다.

어느 날 소진이 수많은 호위병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자신의 고향 낙양(洛陽)으로 행차하고 부모·친지들은 30리 밖에서부터 영접 할 때 집으로 들어 가보니 아내는 몸을 숨기고 형수는 땅바닥에 꿇어 앉아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이를 본 소진은 형수에게 말했다.

“전에는 그렇게도 거만하시더니 오늘은 어찌하여 이렇게 공손하십니까?(하전거이후공야:何前倨而後恭也)”

“서방님의 지위가 높아지고 큰 부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소진이 탄식하며 말했다.

“같은 사람을 놓고 부귀해지면 일가친척까지 두려워하며 공경하고 빈천하면 가볍게 보고 업신여기는구나!”

성어(成語) 전거후공(前倨後恭:처음에는 거만했던 사람이 나중에는 오히려 굽실 거린다)은 이 이야기에서 비롯됐으며 소진이 허벅지를 송곳으로 찔러가며 졸음을 이겨낸 일은 손경(孫敬)의 현량과 함께 현량자고(懸梁刺股:머리털을 대들보에 묶고 허벅지를 찌른다)라는 성어(成語)의 유래 됐다.

이 이야기는 2300여 년전의 이야기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의 부침(浮沈)에 따라 변하는 세상인심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지 주위를 살펴보자.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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