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식, 겨우 1년 짧게 재임… 공금유용으로 수사받다 구속
선거에서 김정우 이사장 당선
5·16 군사정변으로 물러난 뒤 유문호 육군 대령이 시장 부임
배무남, 직원 친화 위해 노력 보문산 나무심기 운동 힘써 야외 음악당 재임 때 건립도

제2대 대전시장은 임지호.

1952년 12월29일부터 1955년 11월18일까지 3년 가까이 재임했다. 임 시장은 충남도청에서 공보과장으로 오래 근무하다 이영진 충남도지사를 중심으로 대전일보 창간작업이 시작되자 실무 책임을 맡은 게 계기가 되어 1950년 10월 초대 대전일보 사장에 취임했다.

제3대 박완식 시장은 1955년 2월 27일부터 겨우 1년의 짧은 재임 기록을 남겼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박 시장은 공금 유용의 혐의를 받고 대전지방검찰청의 수사를 받다가 1956년 9월 9일 전격 구속되었다. 이 날 자 대전일보는 사건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박 시장 뿐 만아니라 부시장을 비롯 관련 공무원들이 줄 소환되었는데 유용액이 당시 화폐 단위로 300만환.

박 시장은 구속 된 후 시의회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의회는 검찰의 기소 여부도 결정된 상태가 아닌데 사표 수리는 불가하다며 반려하는 결의를 했다.

부시장도 사표를 내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검찰은 박 시장을 불구속 기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박 시장은 다시 시장으로서 열성적으로 집무를 하며 사태수습에 나섰는데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1956년 11월 21일 정식으로 사표를 냈다. 이때도 시의회는 수리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수리되고 말았다.

대전시 역사상 이와 같이 시장이 구속되는 등 사건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박 시장은 이듬해 5월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4대 조병순 시장까지 의회에서 선출하는 민선 시장이었다가 5대 정인권, 6대 김양현에서 다시 관선 임명제 시장으로 바뀌었으며, 1960년 4·19혁명으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선시장으로 부활되었다. 정인권 시장은 높은 지명도와 친화력으로 국회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김양현 시장은 1960년 충남 도지사 직선제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대전시장 선거에서는 동아학원 김정우 이사장이 당선되었는데 그는 우송고등학교 전신인 대전상고와 우송대학교, 서대전 고등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정우 시장이나 김양현 충남도지사 모두 당선되자마자 5·16 군사정변으로 두 달 만에 퇴임하는 사태가 벌어 졌다.

그리고 바로 1961년 5월24일 유문호 육군 대령이 권총을 차고 대전시장에 부임한다. 계엄령이 선포된 때라 시청 분위기는 매우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유문호 대령은 두 달 남짓 근무하고 다시 배무남 육군 대령이 1961년 8월12일부터 1963년 5월 9일 까지 비교적 오래 근무를 했다. 그는 군인이었지만 직원들과 친화를 이루려고 노력했으며 특히 보문산에 관심이 많았다. 보문산을 시민의 휴식처로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졌다.

우선 보문산에 나무 심기 운동을 전개했다. 학생들까지 동원하여 소나무, 오리나무, 아카시아를 심었는데 그 무렵 보문산은 땔감으로 나무를 베어 가는 바람에 별로 나무가 없었다.

지금도 보문산에 야외 음악당이 있는데 이 역시 그의 재임시절 이루어 진 것이다.

이렇게 대전시가 1989년 1월1일 직할시로 승격될 때까지 26명의 시장이 거쳐 갔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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