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재 대전보건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독일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히틀러에게 뒤집어 씌우는 경향이 있지만 히틀러 정권 탄생 훨씬 이전인 1904년에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나미비아는 최근까지도 사죄와 배상 요구하는데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백히 드러난 사실임에도 독일은 경제지원을 핑계로 쿨하게 씹어버린다. 당시 헤레로족 80%인 65000명을 학살한 기억은 가해자에게는 까마득히 잊힌 옛날일 일 테지만, 피해자인 나미비아 공화국에서 만큼은 독일과의 관계에서 서린 한이 풀리지 않은 채 현재도 진행 중인 비극적인 역사의 장이다. 독일이 사과한 건 어디까지나 승전국인 백인 연합국과 미국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유태인들한테 뿐이다. 일본은 강대국인 미국에는 사과했지만 우리나라는 승전국도 아니며 유태인만큼 힘 있는 민족도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사과를 하거나 배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965년의 한일협정체제를 고집하는 일본에 의해 한일과거사 청산은 역사적 정의를 향해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최근까지도 일제강점기 약탈과 위안부문제, 강제동원문제, 독도영유권침탈 등에서 근본적으로 법적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사실 인정을 하는 척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저지른 역사적 범죄와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과 사죄에 대해서는 말로만 유감을 표하고 강점기 식민지 합법성만을 고집하며 국내적 입법조치 조차 외면하고 있는 게 일본 정부 현재 모습이다.

일본이 무역보복 조치하는 걸 우리는 슬기롭게 타고 넘어갔다. 작금의 행위에서 보듯 일본도 남의 얼굴에 피 뿜으려면 자신의 입에 피가 먼저 묻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구한말 고종황제는 신하들이 매관매직을 너무 심하게 하니까 “늬들만 다 해 먹지 말고 내가 해 먹을 것도 좀 남겨놓으라”고 했다 한다. 우스개 소리지만 이러고도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고 일본을 이길 수 있었을까? 일제 강점기 36년이 항일의 시기였다면, 광복 후 75년과 미래는 극일의 시기이다. 극일을 넘어 대화하자는 것도 우리가 힘 있을 때 얘기다.

광복 75주년이다. 일본이라는 상대가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사과와 배상을 하라는 게 국민적 요구이다. 이 시점에서 일본이 역사적 정의 실천의 발목을 잡고 전혀 협조하지 않는 점만 부각시키는 건 힘에 밀린 약자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 일뿐이다. 국민 모두 각자 맡은 자리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핵심역량을 키우고 더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힘을 기른다면 사과와 배상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지금 당장은 이 작은 손으로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일본과의 경쟁은 시작됐다. 이 싸움이 상징적 의미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나라 걱정한답시고 광복절날 집회 현장에 나타난 TV 화면 속 일장기나 바라보며 “어떻게 우리가 일본을 이겨!”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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