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식 시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의사소통이야 눈짓, 손짓 같은 몸짓이나 말과 글로 하게 되는데 말은 의사소통의 가장 직접적이고 대표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국어인 한글은 제작과정이나 사용의 예에서 보듯 어떤 언어보다도 민본이고 과학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그리 많지가 않다.

최근 들어서 그리고 꾸준히 한글의 영역을 넓히고는 있지만 영어나 프랑스어, 중국어 등과 비교해 그 모습은 아주 미약하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의 아름다운 말과 글이 분별없이 사용하는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 또는 외래어에 의해 잠식당해 뒤로 밀려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고 우리의 체질에 맞는 모국어는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알쏭달쏭한 외국어의 홍수 속에서 맛깔스러운 우리의 말과 글은 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물론 세계화 속에서 외국어를 무조건 배척하기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K-Pop이나 최근 열풍이 불고 있는 트로트, 영화 등 다양한 한국적인 문화에서 보듯 우리의 국력이 한층 신장할 때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고 더불어 우리의 언어도 그 속에 녹아들어 당당하게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말과 글을 잘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

우리의 국력이 신장함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우리를 알고 싶어 하고 그만큼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관심도 더하여 가기 마련이니 말이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말의 중요성은 이미 고전적인 이야기가 돼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과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은 세간에 퍼져있는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며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좋게 말하다’라는 명제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하나의 지침이다.

이는 서로 마주 보고하는 말, 글로 새기는 말 그리고 인터넷이나 전화로 하는 말까지 포함되며 제삼자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산길에서 낯모르는 사람에게 건네는 반가운 인사와 출퇴근길의 가벼운 눈인사는 하루를 행복하게 한다.

말은 중요하고 우리는 좋은 말을 골라 쓸 필요가 있다.

남이 잘 모르는 아리송한 말을 끌어와 궁금증을 더하고 혼란케 하는 것이 매우 유식한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유행처럼 번진다.

그러한 것이 시쳇말이라 하여도 국민 다수가 공감하고 어느 것에 기인하는 근본 있는 말이어야 한다. 뿌리 깊숙이 가닿는 말은 아마 창조라고 해도 무관할 듯하다. 가능하면 우리말과 글을 찾아 두루 사용하는 것이 모국어의 발전과 확장을 위해서 필요하고 바람직함은 틀림없다.

그러한 면에서 오늘 만들어지는 우리말이 바탕이 된 좋은 유행어가 언젠가는 표준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본다.

우리의 언어는 시대와 문화발달에 따라 숱한 변화를 가져오며 확장돼 왔다.

그러면서 또 잊혀가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집에 맞는 말과 글을 골라 쓰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하고 말하는 풍토가 사회 전반에 깔린다면 우리 인간사회는 그만큼 훈훈하고 더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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