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영 충청남도교육청연구정보원장

얼마 전 평소 남다른 교육철학을 실천하는 선배로부터 글을 하나 받았다. 선배가 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엽서에 일명 선배 체로 쓰인 글귀는 ‘관해난수(觀海難水)’인데, 신영복 님의 마지막 강의를 담아놓은 저서 <담론>에서는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합니다.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합니다’라고 풀어 주고 있다.

짧지 않은 직장 생활 중에 어쩌면 마지막 근무처 이동이 될 수 있는 나에게 선배는 무엇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일까? 생각의 가지를 쳐내지 못하고 펼치고 가는 시간 흐름 속에서 문득 대학 시절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랐다. 3학년 때 전공과목 교수님은 당신의 강의에 신뢰도를 높이고자 하는 대목에서는 ‘내가 모 기관에 있었는데 말이야’를 늘 반복 하셔서 우리 동기들이 그 모 기관이 어디인지 맞히는 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어찌 어찌하여 그 모 기관의 실체를 알게 됐을 때 우리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선배는 옮기는 근무처에서 지난 시간 동안 나름의 대가를 치르고 키워 담은 열매들을 섣부르게 꺼내지 말고 물의 지혜를 토대로 처음부터 다시 배워 시작하라는 것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물이 가지는 속성을 통해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던 선인들의 눈을 통해 찾아낸 지혜는 무수히 많다. 첫째,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서 물이 곧 생명이고 둘째, 물은 서로 다투지 않고, 특히 흐르는 물은 선두를 다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산이 가로막으면 돌아가고, 커다란 바위를 만나면 잠시 몸을 나누어 지나가며,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우고 난 다음 뒷물을 기다려 앞으로 나아가고, 셋째,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 소외된 곳을 찾아 채우고 반드시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넷째, 흘러온 곳과 그 맑고 탁함의 정도를 가리지 않고 모두 품어 안아 결국 큰 바다에 이른다고 했다.

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류가 오랜 시간의 노력을 통해 찾아낸 진리를 사람의 도리로 삼아 살아가는 것에 이른 이를 우리는 성인이라 한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르지 못할 것임을 너무나 잘 알지만 위대한 작품을 쓴 대가들의 시작도 따라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온 정성을 다 모아 따라 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배움의 부족과 오래된 습관의 편안함으로부터 말미암아 생긴 흠결들을 메꿔 갈 수 있을 것이라 소망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그의 저서 <오래된 미래>에서 소개한 라다크 마을 사람들의 삶의 변화가 주었던 커다란 울림은 서방 세계의 가치구조가 보여줄 수 있는 일면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어느덧 책이 나온 지 30여 년 가까이 된 이 시점에서 이미 유행어가 되어 상처받고 오염된 혁신이란 말의 본래의 색깔을 라다크 마을 사람들의 삶에서 조심스럽게 찾고 있다. 무엇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일까? 진짜 혁신은 무엇일까? 그 간의 것을 모두 탈탈 털어내 처음부터 천천히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지금이 아닐까 느끼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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