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일 세종특별자치시 국제관계대사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세종특별자치시를 행정수도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기 위한 논의가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양의 동서를 떠나 원래 수도라는 것은 한 나라의 패자에 집중된 권력의 공간적 지점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중앙 권력의 전후방에 수반되는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가치가 집적될 수밖에 없다. 적정한 조정이 없다면 오늘날 우리 수도권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비능률과 불편은 물론이고 발전의 이익을 지역간에 고루 향유해야 한다는 민주원리에도 반하게 될 수 있다.

칼 마르크스가 그의 저서 '프랑스 혁명 3부작'의 서두에서 중세는 사회를 희생한 정치의 시대이고 근대는 정치를 희생한 사회의 시대라고 설파한다. 중세 조선 건국 이래 서울이 수도로 정해지면서 우리 국가 권력과 재부를 거의 독점해 왔다면 이제 정치권력적 관점을 사양하고 진정한 사회, 경제 및 문화적 분권의 측면에서 세종특별자치를 향한 행정수도 완성의 과제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플로베르 소설 『감정교육』의 주인공 프레데릭은 지방 출신 청년으로, 수도 파리에 올라가 영광과 허영을 추구하지만 결국 남은 것은 허무와 환멸임을 확인한다. 오늘날도 파리가 끊임없이 지방 출신 청년들을 유혹해 타락시켜 소모시키고 있다는 어느 프랑스 철학가의 고발이 요즘 들어 더욱 상기된다. 우리는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지방이라는 낙인으로 타자화 내지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수도 논의의 배경에는 과도한 중앙집권적 독점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가 약 한 세대 가량의 지방자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도 각종 통제 아래서 재정자립도 미약으로 사실상 중앙정부의 하부기관으로서 예속된 상태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의존적 주체인 지방이 한비자(韓非子)의 말대로 행복한 삶으로서 자기가 난 땅에서 일생을 먹고 살만한 총체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수도권이 당면한 부조리를 해체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런던 정경대학의 장-폴 파게 교수는 그의 주저 ‘분권과 대중민주주의’에서 분권(Decentralza

tion)을 통해 지방자치제의 활성화가 어떻게 중앙정부와 거의 유리되어 온 주민들의 생활과 복지는 물론 지방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증진했는지 세계 각국의 사례를 들어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수도 세종의 완성이라는 담론은 그저 현행 행정수도 기능의 수평적 내지 지리적 이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적으로 집적된 수도권의 권력을 균형발전의 원리에 따라 나누는 문제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서울-지방의 이항대립적 지속불가능의 구조를 해체하고 중앙권력 자체의 탈서울과 지방화를 통한 실질 지방분권의 효과를 거양하기를 기대해 본다.

세종특별자치시는 광역자치단체임에도 자치분권과 시민주권의 원칙 아래 기초자치단체의 매개 없이 시민과 직접 호흡하는 단층제 지방정부를 가지고 행정수도 담론의 목적지이자 분권과 균형발전의 실천적 장으로서 도전하고 있다. 장 자크 루소가 그 유명한 『사회계약론』에서 긴 지렛대 끝의 무게가 훨씬 무겁듯이 행정도 먼 거리에서는 더욱 힘들며, 그 단계가 늘어날수록 백성들의 고혈과 고통은 더 늘어난다고 지적한 점은 새겨봐야 한다. 중앙행정이 더욱 국민들에게 가까이 오고 현장 정책과 행정의 산실이 되는 지방자치의 실질을 보장하는 지방분권의 실현이야말로 세종을 통한 행정수도 완성의 정신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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