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충청투데이] 한국전쟁이 극으로 치닫고 있던 1952년 겨울. 한국을 찾은 한 미국인이 차가운 새벽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인부 몇이 함께 길가에 너부러진 쓰레기 더미를 군용트럭에 던져넣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그것도 이런 전쟁통에 너무나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며 그들에게 다가서다 그만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트럭에 싣고 있는 것은 쓰레기가 아니었다.

밤새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죽어간 한국의 어린이들 이었다.

이 일을 경험한 사람이 바로 1952년 한국의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살리자며 ‘컴패션‘이라는 국제구호단체를 설립한 ‘에버렛 스완슨‘이다.

그리고 이 단체는 지금도 25개국 이상에서 200만 명 이상의 어린이를 돕고 있다.

필자는 위기의 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이 구호단체의 이름이기도 한 컴패션(Compassion)이라는 단어가 항상 먼저 떠오른다.

영어사전에서는 연민이나 동정심 정도로 간단하게 해석되어 있지만, 단어의 어원적 의미를 찾아가 보면 좀 더 의미가 풍성해진다.

영어에서 com은 함께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접두사이고, passion은 열정이라는 뜻 외에도 고통이나 수난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두 의미를 결합하면 고통이나 수난을 함께한다는 의미가 된다.

벌써 10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필자에게도 컴패션의 의미를 연구현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필자가 소속된 기관에서는 개발한 기술을 이전받은 기업들에 연구자들을 파견해 그들의 기술사업화 애로를 해결해 주는 일들을 한창 추진되고 있었다.

취지는 좋았지만 사실 연구자들이 전국 각처의 낯선 지역에서 한 달여 이상 머물며 연구장비 하나 제대로 구비 되지 않은 기업을 지원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파견을 나갔던 한 연구자는 기업 주변의 모텔을 전전하며 어떻게 본인이 한 달을 보냈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그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시점에 설문했더니 전혀 다른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설문에 응답한 연구자들의 80% 이상이 본인들에게 유익했다고 응답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기술을 사업화하는 것은 그저 기업의 몫이지 본인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기업파견을 가보니 그동안 기술을 개발하면서 정작 이 기술을 사업화할 고객인 기업들의 고충을 너무나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고 기업들이 우리가 만든 기술을 사업화하려고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를 눈으로 보면서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말하며 “이제는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사업화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물론 이왕이면 기업들과 좀 더 교류의 폭을 넓혀 그들이 꼭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연구자들이 기업들과 함께 기술사업화과정을 수행하며 그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면서 그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단기간 기술사업화를 지원하는 연구인력은 차치하고, 1년 이상 기업현장에서 중소기업이 기술사업화를 지원하는 연구자 수도 매년 30명 이상에 이른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연구기관에는 전문 연구자 외에도 산업계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기술과 시설·장비 인프라가 있다.

이들은 모두 지금 어려움에 부닥친 기업에 가뭄에 단비같이 쓰일 자산들이다.

하지만 연구계가 진정으로 기업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기업현장에서 함께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한낱 보기 좋은 전시물과 다를 바 없다.

고통의 지점에서 산업계와 연구계가 서로 만나야 한다. 그때 우리는 놀라운 산·연 협력의 성과를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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