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소녀의 눈으로 보는 가족…영화 '남매의 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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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녀의 눈으로 보는 가족…영화 '남매의 여름밤'
  • 연합뉴스
  • 승인 2020년 08월 12일 09시 10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8월 1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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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누필름/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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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가족'으로 여겨졌던 부부와 남매가 있었을 것이다. 남매가 성장해 결혼하고 각자의 가정을 꾸린 동안 홀로 남은 늙은 아버지는 낡은 2층 양옥집을 지키며 마당에 방울토마토와 고추, 포도를 심는다.

아들은 미니 봉고차 한 대로 떠돌이 장사를 하고 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아내는 떠나갔다. 어린 남매 옥주와 동주를 데리고 곧 허물어질 예정인 서울 변두리 좁고 허름한 반지하 집을 떠나 아버지의 이층집으로 들어온다.

딸도 아픈 아버지를 보러 왔지만 이미 이혼을 마음먹고 친구 집에 얹혀 지내던 상황. 그렇게 한 가족이었다가 세 가족으로 흩어졌던 가족들이 어느 여름날 다시 한 집에 모인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할아버지의 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 남매와 가족의 이야기라는 시놉시스와 따스한 불이 밝혀진 낡았지만 정겨운 2층 양옥집을 담은 포스터로 소개됐지만 가만하고 따뜻한 터치 안에는 그렇지 않은 현실이 있다.

결혼과 이혼, 여유롭지 않은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 늙어 병든 부모를 위한 돌봄 노동, 유산을 둘러싼 갈등까지 현대 사회의 '문제'라고 일컬어지는, 하지만 많은 이들이 겪는 생과 사의 일들이 특별한 사건도, 인위적인 배경도 없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흐른다.

영화가 단순히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과거에의 향수에 기대거나 무미건조한 현실을 담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 건, 이 일들을 바라보고 겪어내고 성장하는 사춘기 소녀 옥주(최정운 분)의 시선과 마음을 지극히 섬세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옥주는 떠난 엄마와 그런 엄마를 찾는 어린 남동생 동주를 향한 미움과 그리움, 안쓰러움을 오간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중문을 걸어 잠가 귀찮은 동생을 떼어놓고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나이이고, 남자 친구와 외모에 대한 관심은 커지는데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못하는 가난한 아빠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생일에는 가족 중 유일하게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간 사이 집을 팔려는 아빠를 비난하는 조숙한 아이이기도 하다.

말간 얼굴의 신예 배우 최정운(19)은 일찍 철이 들었지만, 여전히 여리고 어린 사춘기 소녀의 마음속에 몰아치는 소용돌이를 자신의 것인 양 고스란히 드러내며 그 시절을 지나온 관객들의 마음으로 파고든다.

오디션에서 피곤해서 자고 싶다고 말했던 동주 역의 아역 배우 박승준이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로 활기와 웃음을 만들고, 아빠 역의 양흥주와 고모 역의 박현영이 낙천적이고 정이 많지만 때로 현실적인 어른 남매로 가족의 앙상블을 완성한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인천에서 찾아낸 구옥이다. 노부부가 살던 집과 세간들은 아이를 키우고 출가시킨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영화 속에서 다시 모인 가족을 품는 집으로 빛을 발한다. 집안 구석구석으로 비쳐드는 햇살이 영화의 온도까지 높인다.

윤단비 감독은 첫 장편인 '남매의 여름밤'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포함한 4관왕을 기록하고, 지난 1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밝은미래상을 받았다.

20일 개봉. 전체 관람가.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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