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대덕대 교양과 교수

구글 번역기는 ‘연세가 어떻게 됩니까?’와 ‘너 몇 살이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구글 번역기는 두 문장을 모두 ‘How old are you?’로 번역할 뿐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야, 너 몇 살이야?”와 “선생님, 연세가 어떻게 됩니까?”는 전혀 다른 말이다. 세상의 그 어떤 언어나 그 어떤 번역기로도 한국어 반말이 담고 있는 무례함과 폭력성을 다 해석해 낼 수 없다.

한국어는 존댓말이 발달한 것 이상으로 반말이 발달한 언어이다. 호칭에 ‘-님’을 붙이고, 주어에 ‘-께서’를 붙이고, 동사의 끝머리에 ‘-하십시오’를 붙여서 존댓말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와 평행하게 상대를 ‘야’라고 부르고, 주어에서 ‘-이/가’를 생략하고, 동사의 끝머리를 ‘-해’로 줄여서 반말을 만들기도 한다. 호칭 정도를 넘어서 하대법이 이렇게 다양한 문법으로 발달한 언어는 세상의 언어들 중에 한국어가 거의 유일하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어 존대법은 절반은 존대 규칙 절반은 하대 규칙으로 구성된 두 얼굴의 문법이다.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버스 안에서 들려온 반말을 들어보라. “야, 너 어디서 왔어?”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집에 가는 길이에요.” “집 어디야? 빨리 가!” “네, 아저씨. 지금 가는 길이에요.” “고향 어디야?”

위의 대화에서 어른은 4가지 하대 규칙을 모두 사용해서 반말을 한다. 그런데 이 어른은 도대체 누구에게 이렇게 반말을 한 것일까?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방글라데시 출신 외국인 노동자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한국인끼리는 하지 못할 반말을 외국인에게는 함부로 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존대 문화 수준이기도 하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갑질은 있다. 그러나 그 빈도와 그 정도는 그 사회의 문화에 따라 다르다. 말에서부터 하대가 가능한 한국 사회에서 상대에게 거친 반말을 반복하다 보면, 반말은 언어폭력이 되고, 언어폭력은 신체적인 폭력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다.

최근 독일 바르비크 대학의 연구진이 온라인상의 혐오 발언과 현실의 폭력 사건의 발생 빈도를 비교했더니 독일 극우당의 페이스북에 난민 혐오 발언이 4개 올라올 때마다 현실에서 난민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이 1건 발생했다고 한다. 독일은 혐오 발언에 대한 입장이 매우 강경해 소수자에 대한 혐오 선동은 법정에서 최대 징역 5년까지 처벌할 수 있다. 독일 의회는 온라인에서의 혐오 발언을 줄이기 위해 ‘명백히 불법적인’ 게시물은 24시간 이내에 ‘덜 명백한’ 게시물은 1주일 이내에 삭제하지 않으면 플랫폼에 최대 6천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는 법을 2017년에 통과시키기도 했다. 독일은 과거 나치 경험으로 인해 다른 나라에 비해 인종차별적인 혐오 발언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대처하고 있으며 강력한 법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독일의 사례를 살피면서 한국어 존대법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한국에서도 혐오 발언과 막말이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더구나 한국어의 경우에는 혐오 발언 이전에 ‘반말’이라는 하대법만으로도 그 어떤 폭력 이상으로 극심한 혐오와 모욕을 가할 수 있는 폭력성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존대 문화는 공손을 강조한다. 그러나 윗사람은 자신들의 권위와 힘과 특권을 모두 누리면서 아랫사람에게 공손하기를 강요하는 존대 문화는 21세기 글로벌 문화를 거스르는 구시대의 흔적이다. 우리가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가려면,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세상으로 나가려면, 어른들도 윗사람도 함께 변해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이 위와 아래를 구분하고 그 높이에 따라 존대와 하대가 이루어지는 동방예의지국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적인 의사전달이 질서 있는 사회로 이해되는 나라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윗사람 존대문화’가 ‘상호 존중문화’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