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주 공군 제19전투비행단 일병

지난 8월 4일과 5일, 나는 평소와 다른 장소에서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를 입은 충주 지역 부대 인근 주민들을 위한 피해복구 대민지원 요원에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긴장된 상태로 도착한 면사무소에는 이장님들이 모여계셨다.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막막함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우리는 이장님들의 안내에 따라 뿔뿔이 흩어져 피해를 입은 주민들과 농민들을 직접 만났다.

피해 현황과 작업 내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는 즉시 피해복구에 투입되었다. 내가 임무하게 된 곳은 논농사를 짓고 있는 농지였다. 농민의 설명에 따르면 논과 논 사이로 흘렀던 시냇물이 갑작스럽게 내린 많은 비로 물이 불어나면서 논 제방을 그대로 무너뜨렸다고 했다.

토사와 함께 쓸려온 잔해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고, 제방이 쓰러진 곳에는 벼들이 힘없이 함께 무너져 있었다. 사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단순히 벼만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벼농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위기를 맞게 된 농민들의 마음도 함께 무너진 듯 했다. 농민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우리는 모래를 담아 포대에 넣고, 포대를 하나씩 쌓아 무너진 둑을 보수하는 작업을 해나갔다. 기상이 좋지는 않았지만, 장마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충주지역에 추가적인 강수가 예보된 터라, 작업을 마냥 늦출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반복적인 작업에 몸도 고되고, 예고 없이 내리는 빗물이 우리를 괴롭혔지만, 한 순간에 삶의 터전이 무너져 내린 농민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다시금 힘을 냈다.

쉬지 않고 꼬박 작업에 매달렸지만, 무너진 제방둑을 모두 복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가 많이 내려서 부대로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솔직하고도 나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피해 주민을 만났을 때 이야기가 귓가를 맴돌았다.

"나 혼자서는 엄두도 못낼 일인데, 공군 장병들이 도와주어서 다시 일어설 힘이 난다." 공군의 4대 핵심가치 중 하나인 '헌신'을 실천하는 날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다시 벼를 세우고, 제방둑을 보강해 나갔다. 하루의 작업이 마무리 될 때쯤, 완전하지는 않지만, 처음 피해복구를 시작했을 때보다는 완연히 이전의 논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이날 내가 세운 것은 '벼'만이 아니었다. 무너진 국민들의 마음을 세우고, 나 스스로도 군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함께 세웠다.

부대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후련하고 마음 뿌듯한 것은 이 때문이었으리라. 충주지역을 비롯해 이번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이 빨리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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