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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의 명장 백기(白起)는 한(韓)나라의 상당성(上黨城)을 찾지 하기 위해 상당성에서 한나라로 들어가는 길목인 야왕성(野王城)을 점령했다.

그러자 상당성의 성주(城主) 풍정(馮亭)은 조나라를 전쟁에 끌어들여 진나라를 물리칠 속셈으로 상당성을 조(趙)나라에 바치겠다고 제의했다.

달콤한 제의를 받은 조나라 효성왕(孝成王)이 평양군 조표(趙豹)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평양군은 반대하며 이렇게 반대했다.

“이것은 진나라의 침략을 받은 한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전쟁에 끌어 들이기 위한 얕은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나라가 침략을 받은 한나라가 상당성을 얻기 위해 야왕성을 점령하여 고립시켜 놓은 것인데 그것을 우리가 앉아서 차지 한다는 것은 크나큰 화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절대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평원군의 의견은 달랐다.

“백만 대군을 동원해 여러 해를 공격해도 성 하나 얻기가 어렵거늘 아무런 대가도 없이 거저 들어오는 17개의 성읍(城邑)을 왜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서로 상대되는 주장을 들은 효성왕은 결국 평원군의 의견을 좇아 한나라의 상당성을 접수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듣고 몹시 화가 난 진나라의 소양왕은 대장군 백기에게 조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 이 싸움에서 조나라의 이간책(離間策)에 속아 명장 염파(廉頗)를 해임하고 애송이 조괄(趙括)에게 작전권을 맡겼다가 장평전투에서 40여만의 병사가 전멸하는 참패를 당했다. 이 사건을 두고 후에 역사학자 사마천(司馬遷) 그의 저서 사기(史記)에 다음과 같이 평했다.

“평원군은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욕심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판단력이 흐려지는 바람에 풍정의 얕은꾀에 빠져 40여 일 만에 장병을 잃고 조나라의 국력을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했다. 이것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지면 판단력이 흐려진다(이령지혼:利令智昏)는 속담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노력 없는 선물은 후일 어려움이 있기에 절대로 욕심을 내서는 아니 된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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