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 충남도립대학교 교수

대한민국 희망의 사다리가 치워지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 생존하기 위한 희망의 사다리는 더욱 그렇다.

지방 대학의 교육자 입장에서 미래를 위해 한발씩 내딛는 학생들에게 방향성을 이야기해주다 보면 우리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학생들은 지방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교육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서울로 가고자 하는 꿈을 꾸진 않는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발을 내디딜 때는 모두 서울을 선택하며 자기가 태어나 교육받은 도시를 떠나려고 한다. 인구 포화인 서울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최근 수도 이전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가 급격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현재 논의하고 있는 수도 이전은 지방을 위한 문제 해결에 초점이 있지 않고 수도권 집중에서 오는 한계의 대안으로 재 점화되었다.

국가성장의 패러다임으로 제시된 지방을 위한 지방분권이 포함되지 않은 점이 문제다.

분권은 중앙집권의 한계를 풀어내는 치료제다.

분권은 단순히 평등한 삶을 위한 해결안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진보의 과정이다. 우리는 그동안 중앙에 자원과 제도, 교육과 인재를 집중하며 고도성장의 결실을 따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시대의 도래, 초연결사회에서 발생하는 전지구적 위기 등 급변하는 세태를 대응하려면 분권은 필연적이다.

지난 20세기 우리가 믿고 따랐던 중앙집중적 생각과 이념은 자치분권 패러다임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이 속도에 따라 대한민국의 명운은 달라진다.

무엇보다 지방에 태어나 지방대학을 나와서 지방에 안착하는 게 억울하거나 낙오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싹터야 한다.

대학 진학에 있어 ‘인서울’을 못하면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여기는 사회적 조건과 생각들의 변화는 분권의 제1과제가 돼야 한다.

흔히 교육, 특히 대학은 인생 성공을 위한 사다리로 불린다. 이 사다리의 강도와 개수는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약해지고 줄어든다.

그 결과 지역 인재는 늘 부족하다. 지식의 보고인 대학들이 수도권에 집중된 결과 지방의 지적 종속도 당연한 일이 됐다.

지적 자립과 지역 인재를 확보하지 못한 분권은 껍데기다. 진정한 지방분권은 각 지역이 고유의 지성과 마음으로 스스로의 기준을 성립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할 때 성립되는 가치다.

특히, 특정 지역이 지식패권을 독점할 때 우리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와 생각들은 사라진다. 특정 지역이 지배하는 지식·정보 독제 시스템이 깊이 뿌리내리면 사회적 다양성은 소멸된다. 분권의 가치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는 자폐증에 걸린다. 하나의 생각만 맴돌 뿐 다른 생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지방분권은 교육 분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역 아이들이 지역에 정착하고 지역마다 생각의 결이 달라질 때 우리는 창의와 혁신의 동력을 얻게 된다.

새롭게 떠오르는 분권 논의에는 교육과 지식의 분권이 주요 과제로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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