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 신명에 몸도 마음도 '얼쑤'

▲ 지난 91년 결성된 황산풍장놀이회는 해마다 15차례 이상 무대에 오르며 논산지역 대표적인 풍물집단으로 자리잡았다. 사진은 지난해 4월 논산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황산풍장놀이회 제10회 정기공연 모습.

덩더쿵 북 소리에 깨갱~ 깨갱~ 꽹과리 소리까지 각기 다른 타악기들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긴장과 이완이 수없이 반복된다.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한다. 시간조차 멈춘 듯하다.

이윽고 '나'는 사라지고, '리듬'만이 살아서 움직인다.

매주 한 차례씩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되면 논산시 공설운동장 지하실 한 쪽 '황산풍장놀이회'(회장 박노봉)란 간판이 보이는 연습장에는 속속 사람들이 모여든다. 말끔한 양복 차림의 공무원에서부터 농사꾼, 포크레인 기사, 중년의 주부, 상근 예비역 등 다양한 계층이 한데 모인다.

잠시 후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고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흐른다.

이어 흥겨운 풍물 소리가 방음시설이 된 연습실 안을 흔들어 놓는다.

충청도 웃다리로 시작해 전라도 우도까지 우리의 전통 가락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꽹과리와 북, 장구, 징을 잡은 손이 흠뻑 땀에 젖을 때까지 흥겨운 우리 가락에 취한 이들 풍장놀이패의 '신명'은 멈추지 않는다.

"저녁에 회원들끼리 모여 한 차례 풍물을 치다 보면 모든 잡념이 없어지고, 온갖 스트레스도 한순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황산풍장놀이회의 창립멤버로 전임 회장직을 맡았던 박종상(49)씨의 풍물 예찬이다.

"우리 전통가락이 안겨주는 그윽한 '맛'에 변화무쌍한 리듬에 따라 회원들끼리 손발 맞춰가는 재미까지 한번 맛들이면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주위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한달에 100여만원의 수강료를 지불해 전북 전주에서 '풍물 과외'를 받았던 지시하(49)씨도 말로 설명키 힘든 풍물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회원 수가 40여명 선으로 논산의 대표적인 사물놀이패로 인정받고 있는 황산풍장놀이회가 결성된 것은 지난 91년.

전국예술경연대회를 휩쓸며 민속촌 등지에서 국내외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물놀이를 펼칠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김재범(41)씨가 연산백중놀이를 지도키 위해 논산을 찾으면서부터다.

논산의 연산백중놀이를 지도해 지난 90년도 전국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김씨가 논산에서 놀뫼국악원을 차렸고, 이후 김씨의 탁월한 실력에 매료된 제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제자 6명이 오늘날의 황산풍물놀이회의 모태가 됐다.

"김재범 원장님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가락을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접해 본 순간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거든요."

기존의 가락과는 차원이 달라 전율을 느꼈다는 이 모임의 총무 송민현(42) 회원이 전하는 말이다.

현재 한남대 어울소리 지도위원으로 사단법인 한국민속예술연구원 이사를 역임했던 김재범씨는 이런 이유로 오늘날까지 회원들로부터 깍듯한 예우를 받는 '대부'로 통한다.

초창기 6명의 창립멤버가 주축이 된 황산풍장놀이회는 이후 정기공연과 초청공연 등을 포함해 해마다 15차례 이상 무대에 오르며 지역 내의 대표적 풍물집단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무료 강습도 꾸준히 벌였다.

지난 93년부터 시작한 무료 강습회를 통해 1000여명 가까운 시민에게 처음으로 장구채를 잡게 만들었고, 우리 가락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남녀를 통틀어 최고령 회원으로 일반인을 상대로 풍물 강습을 벌이고 있는 이상식(여·56)씨는 "전통 가락의 보존과 계승도 중요하지만 일반에 널리 보급하는 것도 우리 모임의 큰 목적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이씨는 또 "60세 이상 나이드신 여자분들이 풍물을 배우고 몸 상태가 부쩍 좋아졌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 흐뭇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올 가을 11번째 정기공연을 계획 중인 황산풍장놀이회는 오는 8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논산시 관촉사 뒷산에서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신명나는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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