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포함 크고 작은 산 많아
오래된 정자나무 마을입구 지켜
예로부터 살기좋은 곳으로 이름나

▲ 계룡산 전경.

계룡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명산중의 명산이고 충청남도의 대표로 상징되는 계룡산이 있다.

계룡IC에서 '계룡대로'로 진입하다 보면 계룡시의 관문임을 알리는 '계룡문'이 있는데, 이 곳에서 직진하는 방향으로 계룡산을 바라다보면 천황봉(845M)이 장엄하게 우뚝 솟아 있다. 이렇게 보이는 천황봉은 계룡시 신도안면 용동리 일대로 되어 있다.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 아래에 자리 잡아 살아가고 있는 계룡시민들이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로는 마을마다 뺑 둘러 감싸고 있는 푸른 숲들과 공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계룡산을 비롯해 향적산, 왕대산, 천마산, 괴목정 등 크고 작은 산과 공원들이 많이 있다.

흐르는 시냇물도 천황봉 남쪽에서 시작하여 숫용추, 암용추를 지나 흐르는 두계천이 있다. 이러한 산(山)들과 내(川), 그리고 산책길들이 주위에 있어 공기가 맑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시민들은 등산이나 산책을 즐김으로써 건강과 행복을 갖게 되어 무엇보다 좋다.

세 번째로 모든 마을마다 입구에 오래된 정자나무(노거수)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정자나무는 한여름에 시원한 자리를 제공해주는 정자(亭子)의 역할과 마을의 수호신 역할도 각각 해 오고 있다. 수령이 짧게는 2~300년, 길게는 5~600년이나 넘은 나무들이다. 이렇게 노거수들이 오래 장수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연환경이 쾌적하며 공기가 좋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곳에 사셨던 조상들께서 이 정자나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듯이 우리도 이 노거수들을 잘 보전해서 앞으로 함께 살아갈 것이다.

네 번째로 교통의 사통팔달지이다. 계룡시는 지리적으로 수도권과 영·호남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가깝게는 대전광역시와 세종특별자치시가 이웃해 있다. 그리고 교통편으로는 호남철도, 호남고속도로, 국도가 있어 전국 어느 곳이라도 편하게 진입하여 도달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계룡시는 역사적으로 일찍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천도까지 하려고 신도(新都)건설을 추진했던 주춧돌이 110여개가 보존되어 그 역사의 징표로 증명되고 있다. 조선왕조 성종 때의 대문장가인 서거정도 계악한운(鷄嶽閑雲)이라는 한시에서 극찬으로 읊기도 했다. 또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곧 정도령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여 이조 국가는 없어질 것이니 밧흔목(살기 좋은 곳)에 가서 살아야 다음 세상에 양반이 된다며 아무개는 계룡산으로 이사했다." 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일제 강점 하 식민지 시대였던 1918~1923년까지 6년간 전국에서 신도안으로 이주해 온 세대와 인구는 총 1124세대에 4,939명으로 1918년 이전에 거주한 기존의 515세대 2,317명에 비하면 213%나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옛 조상들께서는 계룡으로 이주해와 살고자 그렇게 소망했고, 노래했던 이 곳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으니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나 싶다.

그러므로 우리 계룡 시민들은 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잘 가꾸고 보존해야겠다. 지역사회에서는 이웃 간에 인정이 넘치고 서로가 위로하고 배려하는 등 이와 같이 살기 좋은 곳으로 이뤄져 우리가 바라는 지역공동체가 된다면 자연스레 5000만이 살고 싶어 하는 고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최욱환 명예기자 cctoda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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