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 총장

성장기에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하는 것은 매우 귀한 경험이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필자는 영국에서 교환교사로 근무하게 된 부친을 따라 1950~1951년까지 1년 동안 런던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14세였던 필자는 성인은 아니지만 아이 취급받기도 싫어하는 ‘중간’에 속해있었다. 그러기에 런던생활은 완전한 자유는 없었지만 모험과 새로운 경험들로 가득했다. 물론 많은 것들이 부모님에 의해 결정되었지만 간혹 훗날 필자의 취향을 결정짓게 되는 강렬한 경험도 있었다. 1951년, 비 내리는 어느 겨울날이었다. 아버지는 동료들 중 한 명으로부터 신사들의 클럽으로 초대됐으며 거기에는 필자도 포함됐다. 클럽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필자는 어중간한 애어른에서 성인의 세계에 한 발 내딛는 것만 같아 뿌듯했다. 우리를 초대했던 영국신사를 그냥 스미스씨라고 하겠다. 스미스씨는 전형적인 런던택시를 타고 햄스테드에 있는 우리 집에 도착했다. 비 오는 런던 거리를 택시로 15분쯤 달린 뒤 내린 우리는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걸어서 갔다. 그렇게 얼마를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방문한 신사들의 클럽이었다. 둘러보니 그곳은 카드놀이와 독서 그리고 친구들과 오후 칵테일을 마시는 장소였다. 이후 친구들, 또는 부부끼리 모임을 가지는 장소들은 14살의 나이에 경험했던 신사 클럽의 다양한 버전들이었다. 편안함과 친밀감, 그리고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 장소들 말이다. 공군에 있는 동안, 필자는 공군장교 클럽의 멤버였다. 그곳은 백악관에서 겨우 몇 분 거리에 위치한 아름다운 클럽이다. 워싱턴을 방문할 때마다 그 곳에 머무르며, 고향에 온 듯이 클럽의 분위기에 취하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필자의 연대기를 형성해주었던 친구 같은 클럽 한 곳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조지언클럽’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조지언클럽은 1989년 필자가 조지아텍의 교수가 됐을 때 가입했고 이내 ‘단골’이 되었었는데 이제는 필자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또 하나의 추억의 장소가 됐다.

독자 여러분도 각자 아름다운 추억들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필자처럼 자주 드나들었던 단골집이 문을 닫는 것을 경험한 분들이라면 추억에 대해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것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데 더욱 노력하자는 것이다. 전 세계가 2차 유행을 대비하고 백신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의 방역수준과 대응이 매우 우수하지만 코로나는 단 한순간의 방심도 용납하지 않기에 긴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마스크를 잘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지키고 우리를 지키고 사회를 지켜나가면 코로나에게 빼앗기는 단골집을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유난히 긴 이번 장마에 독자 여러분 모두의 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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