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환 충남도립대학교 자치행정학과 교수

사람에게만 품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품격은 사물에게도 있다. 언젠가 국가가 주관하는 공무원 시험에 출제자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 중에서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그건 시험출제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이 출제위원들에게 안내했던 이야기이다. 문제의 품격을 지켜달라는, 국가에서 실시하는 시험임을 감안해서 문제의 내용과 수준에 격을 갖춰 달라는 당부였다. 문제의 품격 때문에 출제하는 내내 얼마나 고민했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시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문제의 품격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봤었다. 그때, 문제의 품격은 결국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품격이 우선한다는 것을 안 것이다.

내면의 상류를 지향하면서 쓰여진 ‘상류의 탄생’이라는 책에는 미국 상류사회의 화법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상류, 그들이 주고받는 편지나 이메일에는 인사치레가 거의 없다. 그들이 챙기는 격의 기준은 있지만, 쉽게 알기가 어렵다. 정중하다고 해서 격이 높은 것은 아니고, 예의를 지키는 것도 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절제된 표현을 즐겨 쓰는데, 여기에는 가볍지 않은 사고의 무게가 실려 있다. 진정한 상류의 기질을 가진 지도자는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표현을 삼가는데, 사물과 상황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자신감과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말의 품격이고, 나아가 사회의 품격이다.

말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예술적 관점에서 교육과정을 개발했던 교육학자 아이즈너(E. Eisner)의 연구결과는 그 답을 찾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그는 자기노출과 표현을 구분했다. 정제되지 않은 자기노출로는 감동을 받기 어려우므로, 교육을 통해 예술적인 표현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예술적 표현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말은 자기노출인가, 표현인가. 말의 품격을 따진다면, 자기노출이 아니라 표현이어야 옳다. 말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워야 하고, 충분한 시간과 연습을 통해 말의 품격이 완성돼야 한다. 말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였다면,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람의 품격이 함께해야 한다. 무릇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말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남에게는 박(薄)하고 자신에게는 후(厚)하다면, 행동의 품격은 없다. 일상의 말과 행동에서 품격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그 사람이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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