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일어나 창 밖을 보는 아들. 김윤주 기자

☞빗소리에 잠이 깬다. '하늘이 무너졌나' 하고 고개를 돌린다. 베란다엔 이미 손님이 있다. 두 살배기 아들 녀석이다. 제일 먼저 일어나 베란다에서 운치를 감상한다. 깼는데 울지도 않았다. 폼을 보아하니 영락없는 시인이다. 감성에 젖어 시를 쓸 것만 같다. '비 오는 날, 우유 한 팩… 우유가 아닌 감성에 취한다' 뭐 이런 거. 아들은 물을 좋아한다. 흙 웅덩이도 좋다고 첨벙거린다. 목욕을 끝내면 운다. 물을 쏟아놓고도 신나한다. 그래서인지 비도 좋은가 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물이 하늘에서 쏟아지니 얼마나 좋으랴. 비가 오면 놀이터에 못 간다는 사실은 모르나 보다.

☞맨날 생각이 바뀐다. 무더위엔 하늘을 향해 "비라도 내려라"하고 (속으로)외친다. 그러다 막상 비가 쏟아지면, 또 화가 난다. 뚜벅이로선 이래저래 고달프다. 우산 들랴, 교통카드 들랴, 신호 보랴…. 손과 눈이 너무 바쁘다. 우산을 써도 옷은 다 젖는다. 그렇다고 큰 우산을 쓰자니 번거롭다. 그리고 어차피 바람이 불어서 다 젖는다. 비가 오니 만사가 귀찮다. 센티해질 감성도 없다. 이젠 나이를 먹나 보다. 걱정만 한가득이다. 미끄러질까봐 무섭다. 비 오는 날 아침은 신발장 앞에서 비장해진다. 젖어도 괜찮으면서 안 미끄러질 신발을 잘 골라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골라도 막상 나가면 한 가지 생각뿐이다. 오늘 출근길에도 생각했다. '아, 그냥 장화를 사야겠다.'

☞적당히가 참 어렵다. 비가 안 와도 걱정이고, 많이 와도 걱정이다. 농사는 더 그렇다. (다른 농가도 그렇겠지만)복숭아 농가가 눈물짓는다. 긴 장마 탓에 복숭아가 썩거나 떨어진다. 자식처럼 키운 복숭아가 우수수 떨어지니 농민은 울 수밖에 없다. 비가 야속할 뿐이다. 낙과율이 10배 늘어난 곳도 있다고 한다. 이상 현상은 또 있다. 뱀이 자주 보인다는 것이다. 비가 많이 오다 보니, 뱀들이 마르고 따뜻한 곳을 찾는다. 그래서 비닐하우스 같은 곳에 자주 출몰한다. 심지어 도심 속 골프장에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뱀 물림 사고도 많아졌다. 때아닌 '뱀 주의보'다.

☞비를 좋아하는 집단도 있다. 술꾼들이다. 술꾼들은 비가 오면 막걸리에 파전 먹는 걸 규칙처럼 정해놨다. 마치 ‘국룰(국민룰)’이다. 말하지 않아도 주막에 모인다. 사실 알고 보면, 술꾼들은 매일 술을 마신다. 맨날 어떻게든 핑계를 만든다. '더우면 시원하라고 맥주, 추우면 속 따뜻하라고 소주' 뭐 이런 식이다. 어찌 됐건 긍정적이니 다행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러시아 폭우 속 수상스키를 타는 사람을 봤다. 긍정의 끝판왕이다. 관종(관심 종자) 같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하지 않았던가. 지긋지긋한 비에 근심 좀 씻겼으면 좋겠다. 코로나도 함께 사라졌으면 좋겠다. 모두들 큰 피해가 없길 바란다.

편집부 김윤주 기자 maybe0412@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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