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대덕구청장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공간을 ‘인생의 경험을 가능케 하는 선천적 조건’이라고 봤다.

공간이 사람의 생활양상과 사상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인식이다.

청년들에게도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해 청년들이 원하는 공간은 충분치 않다. 필수요건인 주거공간은 어떻게든 마련한다지만, 그 이상의 공간은 생각할 여력이 없다. 사회는 여전히 주거와 일자리 등 청년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

청년에게 사회 일원이 될 자격을 요구할 뿐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공간 창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공간 부재’문제는 대학 졸업 후에도 이어진다.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요즘, 청년들에겐 자유롭게 만나 이야기하거나 서로가 꿈꾸는 일을 실천하기 위한 공간이 그들의 삶에서 매우 절실하다.

지자체와 민간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청년 공간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한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청년들은 어쩔 수 없이 비싼 돈을 지불해가며 스터디룸이나 카페를 찾는다.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난 청년 10명 중 2명이 빈곤을 경험하는 청년빈곤 사회에서 이들을 위한 변변한 공간이 없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청년들이 생각과 열정을 공유하는 청년벙커가 이달 초 대덕구에 문을 열었다.

구청사 지하에 있는 민방위교육장을 리모델링한 청년벙커는 청년들이 금전적인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유공간이면서 그들만의 아지트다.

청년벙커는 단순히 머무르는 곳을 넘어 빈 공간에 청년의 이야기를 담는 창고와 같다. 그 안에서 청년들은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공유한다. 이곳은 때로 이야기와 식사를 나누는 거실과 부엌이 되고, 또 함께 공부하는 스터디룸, 사색할 수 있는 서재가 되기도 한다. 그동안의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 청년들만의 문화를 향유하는 자유로운 소통공간이자 열려있는 무대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청년들이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여러 길이 있진 않다.

사회가 점점 팍팍해지고 한편으로는 스펙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가열되면서 청년들은 자신의 위치에 불안함을 느낀다.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기보다 포기하기 이들도 있다.

포기하는 대신에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보다 다양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취업, 주거 등 여러 문제로 위축되어 있는 청년들에게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게 하고, 지속적인 소통 기회를 만들어 주는 공간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청년들에는 힘이 될 것이다.

최근 지역 내 코로나19 확산이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현재 청년벙커는 평일 오후 6시까지 운영 중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애초 계획대로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토요일은 오후 5시까지 개방할 예정이다.

필자는 청년벙커가 청년들이 공동체의식의 중요성을 깨닫는 소통의 장이되었으면 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도 청년들이 ‘함께’를 생각했으면 한다. 한 공간 안에서 청년으로서의 공통된 의식과 생활양식을 나누는 것은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며 서로를 존중하길 바란다.

이렇게 주고받은 청년들의 목소리들로 청년벙커가 가득 채워졌으면 한다. 또래의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는 ‘행동놀이터’, 그것이 필자가 바라는 청년벙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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