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현 호서대학교 법경찰행정학부 특임교수

‘나치의 병사들’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2차 대전 종료 후 연합군 측 포로수용소에서 수천 명의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포로들의 대화를 도청한 내용을 소개한다. 이들 군인들은 철도에 폭탄을 투하해야 하는데 주택가 한복판에 폭탄을 투하하고도 감흥을 느낀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공중에서 기관단총으로 전쟁과 관계없는 민간인과 부녀자, 심지어 어린아이들에게 총알을 난사하며 쾌락을 느끼기까지 한다. 또 거리에 지나가는 부녀자와 어린 학생들을 윤간하고 죽이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서로 경쟁하듯 자랑삼아 자신들의 무용담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의문들을 ‘프레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간다. 프레임이란 하나의 틀을 말한다. 인간의 사고방식에 대입되면 ‘생각 처리방식을 공식화한 것, 즉 어떤 인식의 틀’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전쟁 전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군인들은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를 영웅시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전쟁 프레임이란 틀 속에서는 지식인이든 종교인이든 인종주의자이든 개인적 편차는 거의 없다는 점을 냉정하게 이야기한다.

최근 사회지도층들의 성 비위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평소 헌신적인 봉사 등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이들이라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일탈의 정도를 한참 벗어난 이들의 성 관련 범죄는 방대한 예산 배분권, 폭넓은 재량권 행사, 합법적인 강제수단의 보유, 높은 사회적 지위 등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보면 직장 내 인간관계를 신분적 상하관계나 수직적 상하관계로 인식하기 쉽다. 조직 내 잔존하는 이러한 권위주의적 행태, 종적 서열관계를 과감히 떨쳐내지 못한다면 이러한 권력형 성 비위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저급한 전쟁 프레임에 의한 악한 영향과 관료주의 내에 은연중에 형성된 저차원의 성인지 프레임의 악영향이 만들어 내는 폐해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부분에서 같다.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기는 만큼 그 대가 또한 엄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공고히 자리매김해야 되풀이되는 성범죄를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다. 조직 내 성추행·성희롱 전수조사나 TF 팀 구성을 통한 논의, 간담회 개최, 성범죄 신고앱 구축, 성범죄 특별신고기간 운영 등도 성범죄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든 교육에서 ‘성(性)’에 대한 인지적 감수성을 높임과 동시에 권력형 성범죄는 매우 중대한 범죄라는 것을 꾸준히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요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전히 ‘성차별’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을 뜯어고치는 일이라 쉽진 않겠지만 ‘성범죄는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는 프레임이 빠르게 확산되어 상식으로 통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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