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원 명예기자
▲ 성지원 명예기자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땐가 반에서 몇 명을 뽑아 상을 주는데 뽑힌 적이 있다. 내가 받은 상은 '효행상'이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과 모습을 칭찬하는 상이었던 것 같다. 상을 받은 아이들은 상점처럼 플러스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성적을 산출할 때 그 점수는 아이들의 전체 성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당시엔 상을 받아서 그냥 좋았다. 그런데 뒤돌아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나의 어떤 모습과 행동을 보고 효행상을 준 것인지 의문 아닌 의문이 가끔 불쑥 튀어나온다.

'부모님께 경애의 감정에 토대를 두고 행하는 행위'인 효는 인의예지처럼 전통적 유교 사상에 입각한 유교적 덕목이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효를 배운다. 우리 사회와 문화와 사상의 기반이 됐던 효는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에 뿌리를 내려왔다. 그렇게 효는 우리 사회와 우리의 마음에 내재해왔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효를 수업 시간에 배우고, 효 관련 글짓기, 그림 그리기 대회에 참가하며 효의 의미를 되새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부모님의 양육과 교육을 받으며, 또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마다 가족 친척이 함께 모일 때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며 이런저런 행동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며 효를 배운다.

효는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자, 부모님을 사랑하는 공경하는 마음의 시작이며 동시에 구체적 표현 수단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회가 효를 허울로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효에 대해 강조하고 각종 이름 붙인 대회와 상이 생겨난다.

우리 마음속 효도 그만큼 자라나고 있을까? 당장 나부터도 부모님께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매번 나중에 가서 후회한다. 가장 공경하고 예의를 다 해야 하는 대상인데 싫은 일, 힘든 일 얘기를 하며 사랑과 위로를 달라고 어리광부리곤 한다.

효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사회가 강조하는 것의 십 분의 일, 백 분의 일이라도 진정으로 부모님께 효를 다하기 위해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예를 들어 안부 전화드리기)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성지원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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