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를 바라보는 나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묵묵하고 성실한 삶 귀감
배움 짧았으나 시·그림 즐기던 나의 시아버님에 존경·사랑의 마음 전해

▲ 고혜정 명예기자
▲ 고혜정 명예기자

논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군복무 중에 양친을 잃었다. 어릴 때만 해도 넉넉했던 집안 형편은 전쟁을 겪은 후 기울었다. 위로 형 넷이 있었지만 저마다 먹고살기 바빠서 스물 전후의 막내를 챙기지 못했다. 일을 찾아 대전으로 왔고 알뜰한 아내를 만나 계란 도소매업을 겸하는 슈퍼까지 열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에게도 큰 소리 낸 적 없고 사람 잘 믿는 착한 이라서 수금하는 날이면 동네 노름꾼들의 표적이 됐다.

속 깊은 아내는 바가지를 긁는 대신 양어머니 일을 잠시 도와주자며 딱 2년만 원주에서 살다 오자 했다. 고만고만한 세 아이들이 곤히 자는 사이 두 내외는 새벽같이 일어나 목욕탕 문을 열었다. 아내는 손님을 맞이하는 틈틈이 살림까지 챙기느라 바빴고 그는 지하 보일러실에서 한여름만 빼고 일 년 내내 불을 지피며 청춘을 보냈다. 잘 관리하면 목욕탕을 그대로 물려주겠다는 약속을 믿으며 다섯 식구가 먹고살기에는 빠듯한 임금에도 묵묵히 일했다.

22년째 되는 해, 집이자 일터였던 그곳을 떠났다. 양어머니가 유서 없이 돌아가시자 그 자식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퇴직금 한 푼 없이 쫓아냈다. 두 사람이 받아야 할 임금을 중간에서 가로채 한 사람 몫밖에 주지 않았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따지지 않았다.

그 후 15년 넘게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다. 타고난 성실함과 친절함 덕분에 정년을 넘겨서도 입주민들이 붙잡았다. 그러던 어느 새벽, 근무 교대시간에 맞춰 출근하던 그의 자전거를 자동차가 덮쳤다.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병원 치료도 제때 못 받았다. 통증이 심해졌을 때는 자동차 보험사가 "전후 사정을 모르겠다"며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 스무 해 넘게 보일러실에서 일하느라 청력을 잃은 탓에 전화 통화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배움은 짧았으나 시 쓰기를 즐겼고 그림을 잘 그렸던 그는, 새벽 5시면 칼 같이 일어나고 머리만 닿으면 곤히 잠들던 그는 일을 쉬고 갑자기 늙어버렸다. 스마트폰 메시지를 잘 못 누른 후 해킹당한 것 같다며 낮이고 밤이고 전전긍긍했다. 세 아들들이 번갈아 가며 여기저기 알아보고 그런 일 없다 해도 불면의 밤을 보냈다. 결국 얼마 전, 셋째 아들이 달려가 폴더폰으로 바꿔드렸다. 스마트폰을 쓰기 전까지 10년 동안 글 쓰고 사진 찍던 물건인데 만지작거리며 한숨만 내쉬었다. "큰일 났다. 모르겠어.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어." 예기치 않았던 그날의 교통사고는 언제나 청년 같던 그를 진짜 할아버지로 만들었나보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는 나의 시아버님. "아버님, 존경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고혜정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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