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에서 표현하는 예술 탈피 위해 ‘미디어 아트’ 찾아
새작업 준비중 코로나 터져… 앞으로의 이야기 고민중
대전시, 부산·광주 비해 도시만의 색깔 없는점 아쉬워
다른 사람·집단 무관심 쌓여 ‘무색무취’ 라 불리게 돼
문화예술 공적자금 투입 장점 살려 긍정 활용 이어지길

▲ 노상희 작가. 본인 제공

[충청투데이 서유빈 기자] 살기에는 좋지만 살기에만 좋은 도시. 별다른 특징이 없는 ‘무색무취’의 도시. 2020년 대전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 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 멈춰버린 듯 하다. 하지만 문화예술 불모지인 대전에도 예술이 있다. 나름의 색과 향을 가진 지역 예술인들이 있다. 미디어 아트 노상희 작가를 만났다.

◆ 미디어 아트 작업을 선택한 계기

대학에서 회화 전공을 했고 2013년부터 미디어 아트를 주로 작업하고 있다.

회화가 현대미술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을테지만 지금 피처폰이나 삐삐를 쓰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예술에 있어서 회화는 이야기를 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평면에서 표현하는 예술을 탈피 하고 싶어서 방향을 모색하다가 찾게 된 게 미디어 아트다.

대전은 인문학에서 해방된 지점이 있어서 좋았다. 인문학은 추상적인 말로 추상을 시키는 게 전형화 돼 있는데 과학 장르는 학문 구조가 논리적이다. 그래서 추상화 할 지점이 많지 않다.

미디어 아트를 하다보면 수학을 당연히 해야 하고 과학을 찾아보면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된다. 과학은 나를 빼고 사람이 왜 숨을 쉴까, 산소는 무엇일까를 궁금해하고 원리를 좇다보면 자기가 없어진다.

지금하는 예술도 나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흘러가는 걸 보되 그 중에 나도 하나라고 생각한다.

◆ ‘과학의 도시’ 대전 이미지가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는지

대전에는 아티언스라고 레지던시 프로젝트가 있다. 대덕연구단지 연구원과 예술가가 매칭이 돼서 과학과 예술간에 융복합 작업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2016년과 2018년에 두 번 참여했다. 현업 연구원과 공동 작업을 하는 기회는 국내·외 어디에도 없을 거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2018년 비엔날레에서도 카이스트 생명과학 교수님과 함께 작업했다. 단지 대전에 거주해서 혜택을 받았다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바로 옆에서 현상을 보고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다.

반면에 지속가능한 연계성을 받는 프로젝트들은 아니어서 단편적이기도 하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계기가 돼서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아쉽다.

◆ 사회 현상에 관심을 둔 작품활동을 주로 하는데 요즘은 ‘코로나19’인가

지난 연말과 올해 연초에 새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가 코로나19(이하 코로나)가 터졌다. 전시가 꽤 많이 취소돼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나 문득 생각은 해보고 있다.

이응노미술관 아트랩 대전에 참여했을 때 작업했던 미세먼지도 당시 만연한 문제였다. 미세먼지가 심하니 외출시 주의하라는 내용이 뉴스에 처음 나왔는데 산책하다가 못 걷겠다 싶은 순간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이 언젠가 물과 공기를 사먹게 될 거라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현재를 보면 정말 그렇다. 우리가 원치 않던 세상이었는데 현실이 됐고 앞으로 심해지면 심해졌지 아니진 않을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으니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관심사고 고민하고 있다.

◆ 청년예술인으로 보는 우리 사회

우리나라도 몇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서 희망찬 미래를 그린다.

실상 학문적으로 접근해보면 전반적으로 어둡다.

2000년대 초반에 대학을 들어가서 IMF가 터질 때 사회경험을 시작했다.

그때도 직전 세대까지는 놀다가 졸업했으니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했다.

토플이나 토익에 매진했고 공무원이 각광 받았다.

우리 세대가 지나가면 괜찮아지겠지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 지금 대학생들이 더 힘든 시대를 지나고 있다.

취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고 기성세대들은 원래 있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쟁이 심화됐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로 예술가로서 무력함까지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취소된 건이 많지만 작업이 간간히 들어왔을 때 못하겠다고 한 경우도 있다.

전체적인 사회시스템이 정상적으로 흘러간다는 전제 하에 예술활동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체가 멈춘 상황에서 전시를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공공미술관에서 주체적으로 온라인 전시를 하는데 아무 의미 없고 생색내기다.

작년에는 해외에서 전시 연락도 오고 희망찬 미래를 그렸다.

모든 게 전부 취소 돼서 낙담 했다가 지금은 이 사태가 지난 후 내가 하는 장르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

◆ 대전지역 예술의 문제점

부산이나 광주 등은 그 도시만이 가지는 색깔이 있다. 대전은 회화나 조각, 공예 같은 기존 장르를 하는 예술인이 대부분이고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는 것 같다.

해외의 좋은 것들을 갖고 오고 싶은 생각은 만연하다. 비엔날레를 예로 들면 이렇게 많은 나라가 없다. 각각 비엔날레의 성격을 갖고 생기긴 했지만 대표적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있는 이탈리아 내에도 비엔날레가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행정적 성과를 보이려고 하는 지점에서 출발은 좋은데 아카이빙을 어떻게 했나에 관심이 없다. 예술은 내가 사는 데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1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대전시립미술관의 경우에도 과학과의 융복합 시도를 10년 전부터 했었다. 하지만 대전 내에서 관심 갖는 예술인은 많이 없을 거다. 왜냐면 낄 수도 없고 나랑 상관 없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더 나아가려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혼자 작업하며 지내기에는 좋지만 아쉬움이 큰 도시다.

또 대전은 다른 사람·집단에 크게 관심이 없다. 행정에서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도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으면 큰 문젠데 대전에서는 전시행정이 빈번히 일어난다.

미술로 국한지으면 서울의 경우 대학에서 회화라던지 기존 전통미술 학과라도 현대미술 흐름을 좇으려는 경향이 많다. 회화 전공인데 미디어 아트 수업을 도입한다거나 하는 부분이다. 대전은 한남대 정도가 나서는 걸로 알고 있다.

순간순간은 별 영향이 없을지 몰라도 시간이 켜켜이 쌓이게 되면 드러나게 된다. 대전이 무색무취인 이유는 무관심이 쌓여서 만들어졌다. 본인 장르랑 관련이 없어도 나에게 영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문화예술에 공적 자금이 많이 투입되는 도시인데 긍정적으로 활용되는 지점이 별로 없고 서로 간의 연계성이 약하다. 문화재단이나 시립미술관이나 아티언스·비엔날레 같은 융복합 예술에 관심이 많지만 정작 서로가 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대전에서 미술활동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위험한 도전을 꺼린다.

2017년에 테미예술창작센터에 있었는데 연말에 홍보를 하려고 지역 모 대학에 찾아갔다. 미술대학 교수가 본인 학생들 어차피 붙이지도 않을 거 왜 해야 하냐고 하더라.

미술계에 촌스럽게 뿌리 박힌 관행이다. 속된 말로 ‘꽂아주지’ 않으면 싫다는 것. 기사를 보니 지역교수나 지역 작가가 왜 대전은 지역작가를 안 뽑냐고 하더라.

나도 지역작가라는 틀에 속하지만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역작가 즉 ‘내 사람’이 아니다. 미술도 그런데 다른 분야라고 안 그러겠나. 지역작가들도 마찬가지다. 관심도 바뀔 생각도 없고 각자의 생각만 강렬하게 있다. 한국사회가 촌스럽고 재밌다.

◆ 앞으로의 계획

처음 작업 시작할 때는 희망적인 걸 찾고 싶었고 그 안에서 작게나마 행복하고 싶다는 거만한 목표가 있었다.

예술은 대단할 게 없고 규칙적으로 출근을 안 하니 세상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관찰을 하고 결과물을 내놓는데 사회가 이렇고 앞으로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에 대한 내용이다.

미세먼지 다음 여성에 대한 작업을 했었는데 작업이 끝나고 더 심해지겠다고 느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혐오 사회다. 우리 사회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싶다.

나중에 유튜브를 주제로 작업을 해보고 싶다. 돈을 벌기 위한 광기로 가득한 유튜브 세상이다. 멀쩡한 시스템도 껍질을 벗겨보면 다르다. 사회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서유빈 기자 syb@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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