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는 수많은 심장질환과 암을 유발해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수명도 크게 단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3만 명의 미국 성인을 8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사람들의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사망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실제로 사망률에 영향을 미친 것은 스트레스의 양보다는 스트레스가 개인에게 유익할지 아니면 해로울 것인지에 대한 믿음이었다.

즉 스트레스가 많다고 응답한 그룹 중에서도 스트레스가 해롭다고 믿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실제로 건강에 문제가 생겨 사망률이 43%나 증가했지만, 스트레스가 많더라도 그것이 유익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다고 응답한 그룹보다 건강이 좋아졌고 더 오래 살았다.

스트레스가 생길 때에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기회로 바꾸려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의 중요성은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산업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듯하다.

불과 1년 전,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조치로 부품공급시장에 위기가 찾아왔었다.

일각에서는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치명적이 위기가 왔다며 빨리 일본과 협상에 나서라고 종용하기까지 했다.

국가산업의 큰 스트레스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아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전폭적인 지원으로 놀라운 성과를 이뤄 냈다.

그로 인해 지금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고 자동차·기계금속·전기전자·기초화학 등 산업군에서도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만약 그때 소극적으로 대처했었더라면 우리가 일본의 기세등등함 앞에 지금까지 움츠려 있을지도 모른다.

아울러 지난 1년 동안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의 위기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얻게 된 또 하나의 소득은 글로벌 공급망체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주요 산업을 육성하면서 산업 내 다양한 가치사슬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보다는 핵심역량이 있는 부분을 집중 육성하고 나머지 부분은 글로벌 시장에서 조달하는 형태로 산업육성정책을 추진해 온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소재 부품 수출규제와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국가를 경계로 한 글로벌 공급망의 단절이 국가산업 발전에 치명적인 위협요인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 면에서 정부가 미래육성산업을 포함한 전 산업군에서 글로벌 의존도를 줄이고 국가 내 공급망체계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소부장 2.0 대책을 마련한 것은 매우 시기적절하고 의미 있는 조치였다.

필자는 여기에 더해 국가 내 산업별 공급망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지역별 주력산업 육성정책의 연장 선상에서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지역별 주력산업육성 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부장 분야를 중심으로 한 국가 내 산업공급망이 자칫 지역과 상관없이 수도권에 집중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도권 산단 중심으로 소부장 특화단지가 조성되려는 움직임이나, 소부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 기관과 기업 간 협약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되면 지역주력산업 공급망의 상당 부분은 수도권에 의존하게 되고 지역의 역할은 산업 내의 특정 영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만약 제2차 코로나 위기의 확산으로 지역 간 이동마저 제한을 받게 된다면 지역산업의 성장은 또 한 번 치명적인 위협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지역 내에서 지역주력산업의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부가 힘들다면 최소한 위기상황에서라도 지역 내 공급망이 단절돼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코로나 위기와 소부장 사태를 겪으며 우리가 얻어야 할 올바른 태도이자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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