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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春秋時代) 어느 해 정(鄭)나라의 침공을 받은 약소국 송(宋)나라가 위급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강대국인 진(晉)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진나라 도공(悼公)은 노(魯)나라와 제(齊)나라 등 11개국의 제후들을 설득해 동맹을 맺고 사마위강(司馬魏絳)이라는 장수의 지휘 아래 정나라의 도성을 포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나라는 진나라를 위시한 동맹국 측에 항복했다.

이때 진나라와 패권을 다투던 남방의 강대국 초(楚)나라가 소식을 듣고 정나라로 쳐들어왔다.

초나라의 대군을 당할 수 없는 정나라는 다시 초나라에게도 항복을 해 가까스로 화를 면했다.

그러자 정나라가 진나라 등 12개 나라와 협약을 맺고도 초나라와 이중으로 동맹을 맺은데 분노한 연합국이 다시 정나라에 대한 공격준비를 했다.

이에 다급해진 정나라가 동맹국의 맹주인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했고 진나라가 이를 받아들이자 나머지 나라들도 군사를 철수해 전쟁은 종식됐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정나라는 각종 진귀한 보물과 여러명의 미희(美姬)를 진나라에 바쳤다.

이를 받은 진도공이 그중 일부를 이번 일에 가장 공로가 큰 위강에게 내리자 위강이 정중하게 사양하며 말했다.

“이번의 승리는 여러 나라를 한데 묶어 지휘하신 전하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며 신은 다만 전하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바라옵건대 편안함을 누릴 때 나라에 아직 대비할 일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편안하게 지낼 때는 항상 장차 있을 수 있는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하고(거안사위:居安思危)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사위즉유비:思危則有備) 충분한 준비가 돼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이다(有備無患)’라고 했습니다.”

위강은 이렇게 승리에 들떠 자만에 빠진 진도공을 일깨우기 위해 서경 句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인용한 것이며 같은 뜻을 지닌 거안사위(居安思危)도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개인 일에도 현직에 있을 때와 정년 후 노년기를 맞아 해야 할 일이 다르기에 인간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1만시간의 법칙을 평소에 닦아서 미래의 개인 브랜드가 추락하지 않도록 유비무환 성어를 재인식 해야겠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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