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박원순(왼쪽)과 백선엽. 연합뉴스
사진 = 박원순(왼쪽)과 백선엽. 연합뉴스

☞지난주에 두 명사가 하루 사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백선엽 장군이다. 박원순 시장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인권 변호사, 시민운동가를 거쳐 최장수 서울시장(3선)이 됐다. 그가 남긴 족적은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시민운동의 대부'로 불렸다. 백선엽 장군도 마찬가지다. 백선엽 장군은 국군 역사상 최초의 4성 장군이자 6·25 전쟁 영웅이다. 좋은 단면만 보자면 그렇다. 하지만 죽음이란 게 아이러니하다. 그 사람의 일대기를 다 살펴보게 된다.

☞박원순 시장의 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이었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실종 신고 7시간 만에 발견됐다. 뒤이어 불편한 소식이 알려졌다. 박 시장이 前 비서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발됐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는 '추문'과 '추모'의 경계선에 서게 됐다. 그는 말이 없지만, 그것은 곧 대답이 됐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논란이 됐다. 속죄를 위한 선택이기라기엔 잔인하고 비겁했다. 어느 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진실을 밝힐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못 이겨서였나. 그는 변호사 시절, 우리나라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승소를 이끌었다. 애도의 시간엔 침묵이 강요됐다. 고소인에겐 무언의 압박이 가해졌다.

☞백선엽 장군의 끝에도 두 가지 시선이 엇갈렸다. 그는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하지만 그것조차 논란이 됐다. '전쟁영웅'인 그에겐 또 다른 꼬리표가 있다. 바로 ‘친일파’다. 그는 일제 때 독립군을 탄압한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했었다. 일각에선 백 장군이 배치된 1943년에는 독립운동가들은 이미 연해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가 실제로 독립운동가들을 상대할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간도특설대에 자원입대해 장교까지 지낸 것은 부정 못할 사실이다. 그 시대가 잘못이라 하기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도 분명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은 그럼에도 싸웠다. 백 장군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또 ‘친일파 파묘법’이 입법되면, 그 역시 파묘 대상자에 속한다.

☞정치권에선 두 사람을 내세워 대립했다. 진보는 박원순을, 보수는 백선엽을 지키려 애썼다. 서로에게 예우를 갖추라 비난하기도 했다. 그래서 때아닌 '조문 정국'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먼지 털어서 안 나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래서 존경받기가 어려운 거 아닐까. 애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선택은 우리 몫이다. 그리고 남겨진 자는 남은 일을 해야 한다. 진실은 어떻게든 밝혀져야 한다.

편집부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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