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404

▲ 위위구조(圍魏救趙). 박일규 서예가 제공

전국시대(戰國時代) 초엽(初葉) 위(魏)나라는 혜왕(惠王)이 천하의 인재들을 등용하고 주국강병에 힘을 쏟아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특히 병법에 통달한 방연(龐涓)을 사령관에 기용한 혜왕은 두려울 게 없었다.

어느 날 방연은 혜왕의 명을 받고 조(趙)나라를 침공해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했다.

조나라는 강대국 진(秦)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느라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는데 위나라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고 몹시 당황해 제(齊)나라에 원조를 청했다.

이에 제나라 위왕(威王)은 즉시 전기(田忌)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손빈을 군사(軍師)로 삼아 조나라를 구하도록 했다.

손빈은 방연과 함께 귀곡자(鬼谷子)에게서 동문수학 했으나 방연의 꼬임에 빠져 위나라에 들어갔다가 양쪽 다리를 잘린 뒤 위나라를 간신히 빠져나와 제나라에 있었다.

방연은 천하에 유일하게 자신보다 병법에 능한 손빈을 제거해 스스로 일인자가 되려 했던 것이다.

병력이 모두 집결하자 사령관 전기는 조나라의 도읍지인 한단(邯鄲)을 포위하고 있는 위나라의 수도인 대량(大梁)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지금 위나라 병력의 대부분은 조나라를 치기 위해 동원됐기 때문에 수도 대량은 비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텅 빈 대량을 공격하면 조나라 수도 한단의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이고 돌아오는 위군을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손빈의 계책이 옳다고 생각한 전기는 방향을 바꿔 위나라 수도 대량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급보를 받고 기겁한 방연은 즉시 한단의 포위를 풀고 철군을 시작했다.

전기는 계릉(啓陵)이라는 곳에 매복해 있다가 급하게 돌아오는 방연의 군대를 맞아 공격하여 대승을 거뒀다.

이렇게 위나라의 허를 찔러 위기에 빠진 조나라를 구한 손빈의 위위구조(圍魏救趙) 전술은 중국의 역대 전략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됐다.

우리 주변에도 다양한 분야에 출중한 분들이 많다.

공성불필재야(功成不必在我)로 일의 성공이 꼭 나 한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것은 아님을 알고 주변분들과 함께 일을 처리 한다면 최고의 기업과 국가가 됨을 인식해보자.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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