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청주시 도로시설과 주무관

내가 어릴 적에는 성안길을 '본정통'이라고 불렀다. 일제의 잔재라고 해서 한참 후에 성안길로 바뀌었다. 각설하고 성안길이 본정통이던 시절에 처음 간 백화점은 참 크고 으리으리해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지금 돌이켜 보면 10층도 안 되는 건물이었지만 어린 내 눈에는 멋지고 화려하게만 보였나 보다.

사람이 바글바글해 정신없는 데다 나는 눈요기에 팔려 그만 어머니 손을 놓쳐버렸다. 한참 후 어머니를 잃어버린 걸 깨닫고 세상이 무너진 듯 울었다. 그러다 어떤 아주머니 덕에 무사히 엄마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백화점 버스는 사라지고 진로백화점은 청주백화점, 청주 롯데영플라자로 바뀌고 흥업백화점은 다이소 매장이 됐다. 자라고 세상을 보는 시각 또한 넓어지면서 서울의 백화점에 비해 우리 지역에서 쌍벽을 다퉜던 백화점은 참으로 초라했었구나,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 번화의 중심이 성안길에서 다른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온라인상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사람들이 굳이 시간을 들여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지 않는다. 어느샌가 성안길은 구매력이 있는 중장년층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길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많은 상점이 문을 닫고 '임대 문의', '매매'가 걸린 건물들이 많아져 거리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매우 을씨년스러워졌다. 백화점조차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영세 자영업자들의 처지가 어떨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청주에서 가치가 있는 예스러운 건물이나 전통을 간직한 오래된 점포를 찾기는 무척 어렵다. 성급하게 이곳저곳을 리모델링하거나 고치기보다는 삼겹살 골목처럼 특색 있게 바꾸는 것이 어떨까 싶다. 갑자기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세대가 교체되고 변화가 서서히 시작될 즈음에 서울의 로데오거리를 본떴는지 뜬금없이 성안길에도 로데오거리가 생겼다. 지금에서야 변화의 시대에 발맞춘 거리의 모색이었다는 걸 깨닫고 진정으로 이해하게 됐다. 이런 쇠락이 시대의 흐름이라 여기며 저물어가는 걸 넋 놓고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 상권을 다시 살리려면 어떤 정책으로 노력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지역 경제가 어려운데 롯데 영플라자의 폐업은 많은 것을 돌이키고 둘러보게끔 하는 큰 충격이었다. 위기와 변화는 매 시대에 있었지만 요즘은 너무 자주 쉽사리 찾아오는 듯하다. 부디 이 급물살을 다들 무탈하게 비껴가길 마음 깊이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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