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철재 대전보건대 교수.

김철재 대전보건대 교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 보존·관리되고 있는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이후부터 고대국가 성립 이전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함경북도 일부를 제외하고 한반도 전 지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부족 공동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주로 야산 기슭의 약간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위치상 유력자의 무덤 이전에 당시 부족 사회의 국방을 담당하는 전략무기 역할을 했을 것으로도 보인다. 5톤에서 50톤에 이르는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고인돌은 그 무게 때문에도 축조 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조직력을 동반하지 않고는 축조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점으로 유추해석해볼 때 고인돌 축조 능력은 그 부족이 가지고 있는 힘을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였던 셈이다. 따라서 고인돌을 축조할 때마다 다른 부족에게 자기 부족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전쟁 억지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나 진시황 병마총 등도 그 당시 사회의 묘제를 보여주는 무덤이자 인류문화유산이다. 이러한 거대한 무덤을 축조하는 토목사업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동반했을 것이다. 노예를 동원하고 입히고 먹이는 등 일련의 관리 활동이 지속적으로 진행돼 었을 것이다. 당시는 경영(management) 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는 않았으나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경영방식이 도입된 인류 최초의 경영일 것이다. 따라서 인류 최초의 경영은 인간의 죽음 으로부터 시작돼온 셈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인류 문화나 환경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그중 가장 많이 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장례문화다. 코로나 이전에는 지인의 부음을 받았을 때 조의금 계좌번호가 적혀있다면 다소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나 지금은 오히려 상대에 대한 배려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당연히 직접 조문해 조의를 표하는 게 예법이지만 지금은 그 또한 쉽지 않게 됐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장례문화는 알게 모르게 일본을 답습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2000년대 초에는 장례업자들이 선진 장례문화를 살펴본다는 이유로 앞다투어 일본을 드나들었다. 이러한 와중에 2014년에는 위안부 피해자 황금순 할머니의 제단이 일본풍으로 꽃장식됐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동안 서서히 일본을 답습해오던 장례문화가 코로나 이후 더욱 가속도가 붙어 더욱 빠르게 닮아 갈 것으로 예측된다. 장례식장에는 문상객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고, 장례업계는 일본식 가족장 형식으로 장례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대 장례는 단지 시신의 처리 단계만으로 강조하고 여기에 걸맞은 전통 장례 예법이 많이 생략됐다. 제사 지낼 때 향불을 피우는 건 향나무 연기를 타고 조상신이 하늘에서 오르고 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통 장례에서는 향탕수라해 향나무나 쑥 삶은 물로 마지막 목욕을 시켜서 보내드렸다. 오늘날은 편리성을 이유로 거역스런 냄새가 나는 알코올이 대신하고 있다. 향탕수 사용은 왕조실록이나 염쟁이 유씨등 문학 작품 속에서도 자세히 나와 있다. 향나무 삶은 물은 살균작용이 있을뿐더러 향은 정화의 의미 외에 신을 기쁘게 한다는 민속학 속설이 있다. 따라서 고인을 향탕수로 목욕시켜 드리는 의식은 죽어서 조상을 만났을 때 기쁘게 해 드리려는 효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화장률이 높아짐에 따라 명정(고인의 이름표)마저 생략하는 경우까지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는 순발력도 중요하지만, 다소 불편해도 해묵은 장맛 나는 우리 전통문화유산을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지킬 건 지켜 나아가는 자세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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