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403

▲ 운주유악(運籌-幄). 박일규 서예가 제공

[충청투데이] 유방(劉邦)이 숙명의 라이벌인 항우(項羽)를 누르고 천하를 차지해 한(漢)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수하에 한흥삼걸(漢興三傑)로 불리던 장량(張良)과 고하(蕭何), 한신(韓信) 등 걸출한 세 사람의 영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고조(漢高祖) 유방이 낙양의 남궁에서 연회를 베풀고 장병을 위로할 때였다.

그는 장량과 소하, 한신 등을 극구 찬양하면서 말했다.

“경들은 내가 천하를 얻고 항우가 나에게 패한 까닭을 말해 보시오.”

그러자 고기(高起)와 왕릉(王陵) 두 사람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싸움에서 이기고 성을 차지하면 공을 세운 사람에게 반드시 상을 주고 은혜를 베풀어 천하 사람들과 이익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항우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솜옷을 주는 아녀자의 인정은 있으나 싸움에서 이겨 성을 빼앗거나 땅을 차지해도 혼자만 가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폐하가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차지한 까닭인 줄 압니다.”

그러자 유방이 이렇게 말했다.

“경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소. 장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운주책유장:運籌策-帳) 천리 밖에서 싸워 이기게 하는 데는 내가 ‘장량’을 따르지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어루만지며 군량미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데는 내가 ‘소하’만 못하며 백만의 군사를 거느리며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성을 치면 빼앗는 일은 내가 ‘한신’을 따를 수가 없소. 이 세 사람은 참으로 인걸(人傑)이오. 다만 나는 그들이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했을 뿐이오. 그러나 항우에게는 쓸 만한 인재라고 해봐야 범증(范增) 한 사람 뿐이었는데 그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소. 이것이 내가 승리하고 항우가 패한 까닭이오.”

이 세상에는 혼자 잘났다고 떠드는 사람은 얼마 안 가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사람의 지식은 여러 사람의 지혜를 당하지 못한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들은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즉 자식을 잘 두거나 제자, 동료를 잘 만나 후일 자기가 한일을 이어가든 발전시키든 업적을 이어감이 중요한 듯하다.

유방은 ‘장량·소화·한신’ 3장수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전쟁에서 승리했다.

나의 주변에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지인이 얼마나 있으며 적재적소 배치 업무를 수행했는지 운주유악(運籌-幄:장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운용한다) 성어를 다시 한 번 인식해 보자.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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