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맨땅에서 일어선 大德연구단지
박정희 대통령 대덕연구단지 구상
불시 헬기 타고 와 추진상황 점검
자연 훼손 않고 원형 살리라 지시
국산 수류탄 개발 때 모양 정하려
사과·고구마 모형 돌멩이 실험도
TDX 전자식 자동전화기 개발
최순달 박사 3년 연구 끝 성공
혈서 쓰면서까지 열정 쏟아내

▲ 2003년 9월 29일 진행된 대덕연구단지 조성 30주년 기막 개막식. 대전시 제공
▲ 1989년 대덕연구단지 설명회. 대전시 제공
▲ 대덕연구단지 기본 계획 조감도. 대전시 제공

1973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과학입국'(科學立國)을 그 해의 주제로 내세웠다.

과학기술 없이는 선진 산업국가로 발전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였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대덕연구단지.

처음 과학기술부가 이 사업을 맡았는데 추진이 시원치가 않았다. 그러던 1976년 4월 청와대에서 대덕연구단지 조성 보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과학기술부 장관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추진이 어렵다는 보고를 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오원철 청와대 경제2수석 비서관이 직접 맡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대덕연구단지는 청와대 주도로 탄력있게 밀고 나갔다. 박 대통령은 불시에 헬기를 타고 대덕연구단지 현장에 들러 직접 추진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이 사업에 열정을 쏟았음을 말해 준다.

특이한 것은 박 대통령이 구릉지대와 야산을 깎아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원형 그대로 살리라는 것이었다. 지금 도룡동과 전민동 사이에 있는 대덕 터널도 처음에는 산을 깎아 도로를 내는 것이었으나 이와 같은 박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산을 그대로 두고 터널을 뚫었다.

연구단지에 처음 입주한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그냥 기계창으로 만 불리었다. 무기를 연구 개발하는 업무가 극비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연구원들을 위한 아파트가 서대전 사거리 남쪽에 지어 졌는데 이 아파트 역시 '기계창 아파트'로 불리어 졌다. 그만큼 보안이 철저했는데 여러 나라에서 이곳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초라했다. 후에 한국원자력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한필순 박사는 이곳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병참물자개발실장을 맡았는데 첫 과제가 국산 수류탄 개발이었다. 그때 380그램의 수류탄을 사과형으로 하느냐, 고구마형으로 하느냐가 논쟁이 되었다. 문제는 사과형 둥근 수류탄이 멀리 가는가, 고구마형 길쭉한 것이 멀리 가는가 하는 것.

그런데 마땅한 실험기구가 갖춰지지 않은 때라 한필순 박사는 사과 모양과 고구마 모양의 돌멩이를 구하여 실험을 했다. 참 지금으로서는 옛날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과학자들은 이렇듯 맨손으로 업무에 뛰어 드는 열정이 있었다. 결론은 사과형 수류탄.

연구단지 기관들이 저마다 기술개발의 신화를 창조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전자통신연구원의 TDX 전자식 자동전화기 개발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심 인물은 최순달 박사.

그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NASA에 근무 중 역시 박대통령의 '유치과학자'에 포함되어 귀국한 전자 공학 분야의 최고 실력자였다.

그 당시 우리의 전화기는 자동식 교환기로 통화적격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최박사의 전자통신연구원이 3년의 피나는 연구 끝에 TDX를 성공한 것이다. 그는 연구원들과 혈서를 쓰면서까지 TDX개발에 열정을 쏟았다. 우리 전화통신기술이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른 것은 이런 연구원들의 땀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뉴톤의 사과나무가 있는 한국표준연구원, 자기부상열차를 개발중인 한국기계연구원, 온실가스 저감과 신생 에너지 개발에 심혈을 쏟고 있는 한국 에너지연구원, 2008년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에 탑승,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었던 이소연 박사를 배출한 한국 항공우주연구원, 단군 이래 우리 나라 최대 기초과학 프로젝트라고 하는 라온(RAON)중이온 가속기 공사가 한창인 한국 기초과학연구원, 세계 명문대학 서열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는 KAIST… 등등. 총 1608개 기관에 석박사만 6만7천390명이 땀 흘리고 있는 대덕연구단지는 대한민국 '과학입국'을 위해 오늘도 연구실 불을 밝히고 있다.

다만 연구원들의 잦은 이직 현상은 연구 분위기 안정을 위해 우려스러운 것으로 사기진작책이 요구된다 하겠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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