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大田의 원자력 시대(下)
초창기 연구소 인력·장비 부족
청계천 고물상가서 부품 찾기도
미국 원자로 계통설계 회사에
연구원 파견… 밤낮없이 기술배워
마침내 한국형 원자로 제작 성공
원자력 기적 주역들 후원 지속…
국회에 정부 탈원전 정책 철회 호소

초창기 대전에 있는 원자력 연구소는 인력, 장비 모두가 부족했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필요한 장비를 구하기 위해 장인순 박사는 서울 청계천 고물상가를 자주 찾아 다녔다. 청계천 고물상가를 자주 찾아 다녔다. 청계천 고물상가는 미사일 부품까지도 구할 수 있는 특별지역이었다. 그래서 장 박사는 당시 이명박·서울시장이 청계천 상가를 철거할 때 청계천 상가 자리에 공적비라도 세우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기술인력도 문제였다.

그래서 1986년 12월 영광원자력발전소(현 한빛원전) 3·4호기 원자로의 계통설계를 맡은 미국 회사에 기술 요원을 파견하였다. 그들 미국으로 떠나는 환송식에서 한필순 박사는 원자로 기술을 배우지 못하면 귀국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마라'며 사명감을 부여했다. 이렇게 하여 미국에 도착한 연구원들은 미국이 보여 주지 않는 비밀 도면까지 재주껏 열람하면서 밤낮 없이 기술습득에 열을 쏟았다.

결국 이들의 고생과 노력 끝에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형 원자로 제작에 성공을 거두었으니 1987년의 중수로용, 그리고 1989년 경수로용 원자로 계통 설계기술이 95% 우리 손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그렇게 간절히 꿈꿔 오던 원자력의 '기술자립'이 마침내 이루어 졌으니 그 감격이 어떠했을까!

기술자립에 끝나지 않고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3가지 원자로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아랍 에미리트(UAE), 요르단 등에서 그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 원자력의 기적을 이르킨 주역은 이제 70-80대가 되어 일선에서 물러 났지만 '아톰 할배' 즉 '원자력 할아버지'라는 뜻의 모임을 만들어 계속 원자력 발전을 위해 뒤에서 후원하고 있다.

한필순 박사는 5년전 고인이 되었고 장인순(80), 전재품(77), 김병구(76), 박현수(73), 이재설(70) 박사 등이 그 멤버들이다.

이들은 이번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간곡한 제안을 준비했다.

발전단가를 보면 원자력=60원, LNG=120원, 태양광=180원으로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의 선택은 자명한 것 아니냐며,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 최강의 원자력발전의 생태계가 침몰하고 있다고 '아톰 할배'들은 개탄했다.

또한 이들 '아톰 할배'들은 원자력 발전소사고를 경험하고도 러시아, 미국, 일본이 왜 탈원전을 하지 않는지, 그리고 우리의 원자력 생태계가 붕괴되면 북한과 중국이 가장 기뻐할 텐데 부디 국회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철회케 하라고 호소했다.

이들 '아톰 할배'들은 배고픈 시절 원자력기술을 위해 일생을 바친 한국 원자력의 산 증인이며 원로들이기 때문에 '탈원전'을 막아 달라는 호소는 매우 무겁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기에는 추호의 사심도 없는 애국심의 발로다.

지금도 유성구 대덕대로 북대전 I.C에서 나서면 정면에 대형 태극기가 나부끼는 것을 보게 된다. 원자력연구원 옥상의 태극인데 정부 기관에 게양된 태극기 중에 제일 큰 것으로 유명하다. 장인순 박사가 원장 시절에 그렇게 한 것이다.

왜 그렇게 큰 태극기를 옥상에 걸었을까? 그만큼 '원자력 기술 식민지'로 부터의 독립을 갈망하는 염원 때문이었으며 오직 애국심으로 원자력 기술을 발전시키자는 뜻이었다.

따라서 이들 원자력 원로들의 순수한 애국심에서 우러나는 탈원전 정책반대는 충분히 고려돼야 하지 않을까? 그 결과가 주목된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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