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우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 대리

이철우 한국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 대리

영정사진 속 할매는 40년 전 50살의 모습이었다.

할매는 그런 사람이었다. 억척같고, 고집도 세고, 말도 함부로 하고, 덕분에 미움도 많이 받았지만, 아들에게 만큼은 사랑받는 어머니셨다. 그런 할매가 임종을 알리지 못한 채 그렇게 쓸쓸하게 병상에서 운명하셨다.

'할매가 돌아가셨다'

예상했지만, 당장 오늘이라고 생각지 않던 일이 일어나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정신을 차렸을 때 할매의 아들, 나의 아버지의 슬픔이 느껴졌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의 슬픔은 눈물이 되어 구슬프게 술잔 위로 떨어졌고, 그 술잔 속 파도는 나의 가슴속에 밀려 들어왔다. 나는 다시 할매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90살로 운명하신 할매의 모습과 너무 달라서인가, 내 마음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영정사진 속 할매는 40년 전 50살의 모습이었다.

발인 날, 나는 할매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었다. 할매는 생각보다 가벼워서, 90년이라는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너무 가벼워서, 마치 어린아이의 솜사탕을 뺏어 든 것 같았다.

할매는 자신의 과거가 담긴 나무로 만든 관을 지나 나와 함께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줄지어 아름답게 피어있었고, 나는 할매가 꽃들을 잘 볼 수 있도록 사진을 높게 들었다. 나는 할매에게 당신의 삶도 아름다웠다고, 꽃과 같은 아름다운 삶을 사셨노라고…. 강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 이름 모를 야생화, 그 꽃의 삶이 당신과 같았다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할매와 함께 할매가 살았던 집과 마당을 거닐고, 뒷산도 같이 올랐다. 할매와 이렇게 가까이 오래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못 만났던 가족이 만난 것처럼 반갑고 아련했다. 그리고 할매는 할배와 함께 조그만한 봉투에 담겨 땅속에 몸을 누였다. 할매의 아들, 나의 아버지는 할매에게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자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고, 나는 그저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한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길가에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그 꽃의 이름은 금계국.

아름다운 금계국이 핀 계절, 사진 속 할매는 40년 전 50살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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