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서 찾은 빨간 내복… 자립하며 첫 월급으로 선물했던 일종의 공로패
시대 변했어도 부모님께 속옷 의미 깊어… 추억 떠올리며 다시금 마음 전해

▲ 안시언 명예기자

때 이른 폭염과 마스크 착용으로 불쾌지수가 나날이 갱신하던 6월의 어느 날,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전통시장 내 속옷 가게를 들렀다.

1994년부터 속옷 가게를 했다는 가게 사장님. 시장은 무릇 사람도 많고 사연도 많은 곳이 아니던가.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아직도 빨간 내복을 사가는 손님이 있느냐'고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그러자 사장님의 즉답이 돌아왔다.

"그럼요, 빨간 내복은 사는 사람은 줄어도 없어지진 않을 거예요."

빨간 내복은 의류계의 스테디셀러(steady seller), 의식주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 이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선물했던 빨간 내복. 빨간 내복은 아이가 자라 성인으로 독립한 자립의 의미이기도 했다.

이제 모든 금융거래는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부모의 품을 떠난 자식은 오프라인 선물보다 온라인 송금을 선호하는 시대지만 여전히 첫 월급을 받았다며 부모님의 속옷을 사는 젊은이가 있다며, 그럴 때면 반갑고 기특한 마음에 양말 한 켤레라도 챙겨 주게 된다고 말하며 사장님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자식에게 첫 용돈을 받았다며, 혹은 빨간 내복을 구입해 입으라고 돈을 챙겨준 자식 자랑을 하며 부모가 속옷 가게를 방문하는 일도 많다는 일화를 덧붙였다.

굳이 묻지도 않은 자식 자랑을 래퍼처럼 쏟아내는 그들에게 빨간 내복은 단순한 의류가 아닌 일종의 공로패와 같은 의미였다.

이제 내복 없이도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생활공간과 기능성 의류가 존재하지만, 아직 우리 부모님의 마음 한쪽엔 빨간 내복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할 수 있다.

사장님 이야기를 들으며 아주 오래전, 내가 선물했던 속옷을 지금도 간직하시던 엄마의 모습과 얼마 전 스마트폰을 구입했다며 조심스럽게 사용법을 물어 오던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 됐다.

나는 잊고 살았던 첫 월급의 선물을 간직하는 엄마에게 나는 얼마나 귀찮아하며 카카오톡을 설명했던가. 부부 사이에 절대 해선 안 될 운전을 가르치는 것만큼 내 인내심이 초 단위로 휘발되는 것에 나 또한 적잖이 놀랐다.

엄마는 "난 구구단을 가르쳐 줄 때도 화 한 번 안 냈었는데"라며 소리 죽여 말할 때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세상에서 처음 만난 나의 첫 선생님께, 아직도 딸의 첫 선물을 간직하는 엄마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삼복더위와 초가을의 무더위는 남았지만 나는 주저 없이 빨간 내복 한 벌을 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부모님이 자식이 선물한 빨간 내복에 그토록 기뻐했던 것은 정작 내복이 아니라 부모님의 겨울을 지켜줄 빨간 내복을 고르는 자식들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안시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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