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강동대학교 사회복지행정과 교수

오대산 상원사를 찾아 가는 길목에 월정사가 있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1㎞ 넘게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장쾌하게 쭉 뻗은 전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산중의 고요를 맛본다. 이 고요속에 월정사를 지나 맑은 계류길 따라 상원사를 오르면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등이 어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없는 감상곡이 되어 흐른다.

자연의 신비에 따라 오대산의 야생화가 미소를 짓고, 조릿대 나무의 나부낌과 함께 바람에 쓸려 비파소리를 낸다. 상원사의 동종은 신라 성덕왕 때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이란다. 경주에 있는 선덕왕신종(에밀레 종) 보다 45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범종으로, 조각 장식이 아름다움은 물론 소리도 매우 고아 통일신라 최고의 작품으로 국보 제 36호로 지정돼 있다. 이 상원사 동종은 높이 1.67m, 종구 97㎝로 종소리 또한 빼어나다. 상원사 범종은 상·하대에 아름다운 당초문이 새겨져 있고, 종신 사이에는 하늘을 나는 비천상이 조각돼 있다. 비천상은 좁고 기다란 천의를 너울거리며, 연꽃방석 위에 무릎을 꿇거나, 꼬리가 긴 꽃구름을 타고 푸른 하늘에 떠서 두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로 비천하는 모습이다. 비천상에 구름을 타고 공후라는 악기를 타면서 비천하는 여인의 모습을 고조선 때 여류 음악가요, 시인인 여옥(麗玉)의 모습라고 전하여 진다. 공후라는 악기를 본 사실은 없고 연주를 들어본 사실도 없다. 고조선 문학사에서 전해오는 최초의 여류 시인이자 최초의 음악을 전해준 공후인에 따른 배경설화의 여인, 여옥이라는 사실 뿐이다. 신비의 상원사 범종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채 아쉬워하며 나오는데, 갑자기 운해가 낀다. 이 운해는 범종 종벽에 두 천녀(天女)가 천의(天衣)를 휘 날리며 구름 속을 날고 있는 비천의 구름이다. 구름 속의 두 천녀 중, 한 천녀는 하프 같은 공후를 타고 있고, 한 천녀는 색소폰 같은 동적(洞笛)을 불고 하늘을 날고 있다. 언제인가 서양종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서양의 종은 천사들이 완벽한 날개를 달고, 아기 예수와 마리아의 주위에서 하늘을 나는 날개의 꿈을 꾸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천녀들은 왜 날개가 없을까? 의문시 생각해 왔다. 한국 천녀는 날개 대신 구름과 옷자락으로 난다. 우리의 종에는 천녀(천사)가 보살, 여래의 주변을 구름 바람을 타고 날고 있다. 우리나라 어느 종이나 그림에도 비천하는 천녀에 날개가 달려 있지 않다. 대신 서양의 어느 종이나 그림에도 예수도, 성모 마리아도 구름을 타지 않고 있다. 구름과 바람 그 속에 잔잔한 강가로, 피안의 세계로 가는 반야용선이 용화세계로 가는 중생을 인도하며, 우리의 보물 상원사의 동종을 보지 못하고 아쉬움에 세조대왕이 피부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목욕을 하던 관대거리 앞으로 나오니 그 앞에 계류가 흐른다. 천년의 역사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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