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청주시 흥덕구 지적팀장

모처럼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이에 봄은 이미 무르익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노란 개나리, 분홍빛 진달래, 그리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순들을 보며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여느 때라면 벌써 몇 번은 경험했을 나물 뜯는 재미를 까맣게 잊고 있는 동안 봄은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벚꽃과 진달래가 만발한 양성산을 지나치며 잠깐 어릴 적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 양성산 자락은 나의 아지트였다. 겨우내 얼었던 눈이 녹으면서 물가의 버들강아지가 피기 시작하면 나와 친구들은 분주해졌다.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냉이를 캐러 다니고 좀 더 따뜻한 봄바람이 불면 돌미나리와 쑥을 뜯으러 다녔다. 나물을 한 소쿠리 뜯어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금의환향이라도 하는 거처럼 우쭐한 기분이었다.

소쿠리를 받아든 엄마는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어린아이 손으로 뜯어온 나물을 보면 기특하면서도 먹기에는 좀 지질하지 않았을까 싶다.

유난히 꽃을 좋아해 봄을 알리는 버들강아지를 시작으로 가을의 억새까지 우리 집 못난이 꽃병에 꽂아두는 호사를 누렸다. 꽃병에 꽃을 꽂고 화사하게 변한 우리 집을 바라보면 우리 동네 제일 부자인 친구네 집 못지않게 근사해 보였다.

송홧가루가 잠잠해지고 훈훈한 바람이 불면 나와 친구들은 어김없이 양성산 계곡으로 쌀과 냄비를 들고 소풍을 하러 갔다. 돌을 쌓아 아궁이를 만들고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와 불을 붙이고 냄비에 밥을 지었다. 냄비 뚜껑 위에 돌을 얹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얀 눈이 쌓인 겨울엔 오빠들과 산토끼를 잡기 위해 양성산 자락을 헤매기도 하고 양성산이 푸르러지면 으름, 다래, 보리수 열매 등을 따기 위해 수도 없이 양성산을 헤집고 다녔다. 그렇게 양성산은 나의 어린 시절을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예전처럼 양성산에서의 추억 놀이를 다시 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등산로가 아닌 어릴 적 흔적을 찾아 양성산 숲길을 걸어보곤 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길은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곳들이 많다.

지금쯤이면 양성산에는 진달래가 한창일 텐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올해는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했다. 어릴 적 그 친구들과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진달래가 지기 전에 양성산에 올라 추억 소환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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