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조 미래통합당 대전시당 수석대변인

요즘 등산이나 트래킹이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최고의 스포츠로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필자도 얼마 전부터 지인들과 함께 집에서 가까운 산을 건강 삼아 10여 ㎞를 걷고 있다. 녹음이 한층 짙어진 산속 오솔길을 걷다 보면 나무 숲 터널은 이른 여름의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을 막아 준다. 아카시아꽃과 찔레꽃이 절묘하게 섞여 바람 타고 전해지는 향기는 일 년 중 이 시기에만 누리는 호사일 것이다.

이팝나무 가로수가 회색빛 도심지 한가운데 6월의 눈꽃을 선사한다면 산 중턱에는 하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피어있는 아카시아꽃은 등산객들의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어릴적 아카시아꽃은 짙은 향을 내어주기도 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간식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초겨울의 아카시아는 작년 먼 길을 떠나신 아버지를 떠오르게 한다.

늦가을부터 옆집 동네 아저씨들은 길고 추운 마을의 한 겨울 땔감용으로 야산의 널브러진 잡목을 한 지게씩 해 온다. 아버지는 유독 가시가 촘촘히 있는 생 아카시아를 좋아했다.

집채만 한 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게 한쪽 한구석에는 늘 가시 장갑이 꽂혀 있었다.

한겨울 어둠이 몰려오기 전 아궁이 군불은 언제나 당신의 몫이었다.

아카시아를 듬성듬성 꺾어 아궁이에 넣으려면 돌처럼 딱딱하고 시꺼멓게 변한 굳은살이 있는 당신도 가시를 피해갈 수 없었다.

아랫목이 뜨뜻해지고 저녁밥을 먹을 때야 비로소 안방으로 들어온 아버지의 손 마다엔 여기저기 가시가 박혀있었다.

어머니께서는 가시 박힌 아버지의 손마디를 잡고 옷핀으로 빼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께서는 생 아카시아는 가시가 많아 여간 성가시기는 했겠지만 한번 불이 붙으면 다른 나무와 달리 화력이 좋아 유독 좋아하신 듯하다. 빨간 아카시아 알불이 약간 약해지면 석쇠 위에 들기름 두르고 가는 소금 뿌린 김을 앞뒤로 살짝 구워내면 겨울 반찬으로는 최고의 별미로 기억이 된다.

겨울철 온기 가득한 안방을 만들기 위해 아카시아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 우리들 아버지의 일상이자 삶의 모습이었다.

이젠 휴대폰을 한참 뒤적거려야만 만날 수 있는 아버지, 오솔길 사이에 넘쳐나는 아카시아 꽃내음을 온몸으로 맡으며 그 옛날을 회상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