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 이룩한 名將 김유신의 고향 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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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 이룩한 名將 김유신의 고향 진천
  • 충청투데이
  • 승인 2020년 06월 11일 18시 35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6월 12일 금요일
  •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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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鎭川의 김유신 生家
상계리 계양마을 길상사 터에서 탄생
영정 봉안… 충북 기념물 1호 지정 돼
화랑벌·세금천 농다리 등 유적 많아
수많은 전투서 용맹함·리더십 두각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돈독한 관계
백제 멸망·고구려 정복… ‘삼국통일’
▲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진천군 제공
▲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진천군 제공
▲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진천군 제공

[충청투데이 충청투데이]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하고 봄, 가을 제사를 지내는 길상사(吉祥祠)는 충청북도 기념물 1호로 지정될 만큼 성지처럼 인식되고 있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 있는 길상사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김유신의 생가 터이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595년(신라 진평왕 17년) 진천군의 신라시대 이름인 만노군 태수로 있던 아버지 김세현과 왕족의 손녀인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그 때 태어난 김유신의 태는 태령산이라고 하는 뒷산에 묻었다.

아버지 김세현과 할아버지 김무력 모두 무장이었는데 아버지의 이곳 '태수' 직함은 오늘 날 군수급이면서 군 수비대장 역할까지 했다고 본다. 진천은 백제가 아니라 신라의 영토였고 고구려와 충돌이 잦았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가 태어난 생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그 터에서 발견된 주춧돌 등을 근거로 1983년 복원을 했고 1957년에는 국사학자 고 이선근 박사가 비문을 쓴 사적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정말 김유신을 빼고는 진천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화랑도의 훈련을 시켰다는 화랑벌, 고구려에 빼앗겼던 낭비성을 되찾은 기념으로 놓았다는 세금천의 농다리, 말 타며 무술을 연마했다는 치마대… 등등 끝이 없다.

609년, 김유신은 신라 엘리트 청소년들의 교육·훈련그룹이었던 화랑도에 들어가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숱한 전투에서 용맹성과 지도자로서 능력을 보였으며 여동생을 김춘추에 시집을 보냄으로써 신분상승도 함께 이루어 졌다. 여동생은 김춘추(후에 태종 무열왕)와 사이에 혼사도 치루기 전 임신을 했는데 당시 법으로는 화형에 처할 위기였지만 선덕여왕이 혼인을 시키는 용단을 내렸다는 설도 있다.

특히 훗날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와의 돈독한 인간관계는 김유신의 미래에 결정적 힘이 되어 주었으며 그의 대망(大望)을 이루는데 뒷받침 역할을 했다. 김춘추가 백제 공격을 위해 고구려를 찾아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김춘추는 출발에 앞서 김유신과 생사를 함께 한다는 결의를 할 정도였다. 비록 김춘추는 고구려 연개소문으로부터 청병을 거절당하고 왔지만 이렇게 김춘추, 김유신은 그야 말로 찰떡 궁합이었다.

신라는 고구려의 협력을 거절당하자 중국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를 치기위한 교섭을 비밀리에 전개 '나당연합군'의 결정을 보게 된다.(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참조)

두 사람은 신라 귀족으로 선덕여왕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비담을 진압하고 진덕여왕을 옹립하는 데도 행동을 같이 했다.

김유신은 비록 당나라 힘을 빌려 백제를 공격했지만 민족적 자존심은 대단했다. 한번은 신라군이 백제 공격 지점에 늦게 도착했다 하여 당나라 소정방이 김춘추에게 신라 장군 하나의 목을 베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소정방은 오만방자 했다.

이에 김유신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백제와 싸우지 않고 당나라 군대와 싸우겠소'하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 모습에 질린 소정방이 물러 설 수밖에 없었다. 백제를 향해 출정할 때 마침 그의 집 앞을 통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집에 들르지 않고 말에 탄 채로 집 우물에서 물을 떠오자 그것을 마시고 나서 '물맛이 그대로 구나' 하고는 말을 달렸다. 그렇게 공과 사를 구별하는 모습에 부하들은 존경심을 갖게 되고 사기도 높아 졌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하여 김유신은 660년 백제를 멸망시켰고 '상장군'에서 '태대각간'이 되어 668년에는 고구려까지 정복했으며 우리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했다.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김유신은 673년(문수왕 13년), 78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